청주시 서원구 모충고개 일원에 자리한 모충사.
청주시 서원구 모충고개 일원에 자리한 모충사.

재선 도전에 나선 김병우 교육감후보가 지난 10일 예비후보 등록후 본격 선거전에 돌입한 둘째 날 찾은 행선지 보은군에서 군민들에게 약속한게 있다.

바로 동학농민혁명의 산실인 보은군에 도내 11개 시·군의 학생들이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보은군과 상의해 '역사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학농민혁명하면 아픈 과거를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이다. 모충동은 충북대 후문에서 시내로 넘어가는 모충고개 일원을 말한다.

원래 모충동은 화흥리라 불리었다. 청주군 남주내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교리, 화청리, 화동리, 수곡리, 보십리 일부와 서주내면의 화청리를 병합, 사주면에 편입됐었다.

이후 1935년 청주읍에 편입됐다가 1947년 이곳 '모충사'의 이름을 차용해 모충동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모충사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대전방면에 집결한 동학군을 해산시키기 위해 충청병영의 영관 염도희가 교장 박춘빈, 대관 이종구 등 70여명의 병사를 이끌고 출전했다가 청주시 흥덕구 강외면 일원에서 모두 전몰했다.

이들 관군들의 순절을 기리기 위해 1894년 11월 전임목사 임택호가 남석교 밖에 모충단을 설치했다.

1903년 안종환의 건의로 순직한 장교의 증직과 모충단의 단호가 하사됨에 따라 당산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고 기념비도 세웠다.

경내에 동학군 격퇴에 공이 컸던 병마절도사 홍재희의 사적비가 있고, 모충회에서 관리하고 있다는 안내글이 쓰여져 있다.

아마도 청주 읍성, 육거리, 무심천 남들 등 지역에서 동학농민군이 크게 패하자 잔여세력을 소탕하기 위해 나섰던 청주병영 군사 70여명이 매복해 있던 동학농민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전몰하면서 그 넋을 위로하고자 위패를 모신 사당이 바로 모충사인 듯 하다.

이 모충사가 있는 곳이라 해 훗날 모충동이란 지명으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근 동학농민혁명이 재조명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명 이름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사진)은 청주 문의에서 태어나 충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를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 입사,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문화와 지명에 관심을 갖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명속의 역사산책(디자인 신화)’이란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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