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군청내 느티나무 둥지에 까치들이 내려 앉고 있다.
괴산군청내 느티나무 둥지에 까치들이 내려 앉고 있다.

 

충북 괴산군은 지명에 산(山)이 들어 갈 만큼 산이 많은 농촌지역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통여건이 불편하고 농업이 주를 이룬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으나, 중원대학교 및 육군학생군사학교가 개교하고 대제산업단지, 발효식품단지 등의 여러 산업단지 조성과 최근 국립호국원 유치 등으로 일자리 창출과 함께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개발 호재에 힘입어 그동안 부족했던 주거 및 문화 인프라 확충을 위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괴산읍 동부리 일원에 공공주택지구를 조성하는 한편 괴산읍 대사리 일원에 인구 3000명 거주의 괴산미니복합타운 조성계획을 발표하는 등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성장 동력을 갖춰 가고 있다.

괴산군은 본래 고구려 잉근내군(仍斤內郡)이라 하였는데 신라 경덕왕이 괴양군(槐壤郡)으로 바꾸고 이후 괴주(고려 초), 괴산(조선 태종 3년)으로 바꾸었다. 경덕왕은 왜 ‘느티나무’(槐)를 사용해 지명을 만들었을까?

이에 대한 사연은 이렇게 전해진다. 서기 606년(신라 진평왕 28년) 신라의 장수 찬덕(讚德)이 이곳 개잠성을 지키고 있었는데 백제군이 침략해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신라군은 백제군에 맞서 100일 이상을 버티었으나 성내에 식량과 물이 떨어져 성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리게 됐다. 이 때 찬덕은 군사들에게 끝까지 항전하도록 설득하였으나 대부분의 군사들이 도망치게 돼 결국 백제에 성을 내주게 된다.

찬덕은 끝까지 싸우다가 성을 빼앗기자 울분을 이기지 못해 성안에 있던 큰 느티나무(槐)에 머리를 받아 자결하게 된다.

그 후 삼국을 통일한 무열왕은 찬덕(讚德)의 높은 충절을 기려 당시 개잠성이라 부르던 이곳을 느티나무를 심어 괴양으로 고쳐 부르게 하면서 이후 현 지명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괴산군에는 유독 오래된 느티나무가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괴산교육청을 비롯해 수령 100년 이상 된 느티나무 110여 그루가 심겨져 있고, 300년 이상 생존한 느티나무도 50여 그루가 넘는다고 한다. 가히 느티나무의 고장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 현재 달천으로 불리는 괴강(槐江) 변의 괴탄(槐灘)이란 지명 역시 ‘느티여울’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괴산은 일찍부터 느티나무와 인연이 깊었던 곳으로 보인다. 현재 괴산군이 정한 괴산군의 군목(郡木 : 군을 상징하는 나무)이 느티나무인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괴산군의 지명은 그 이름답게 지금부터 1500여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신라와 백제의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을 전해주는 지명이 되고 있다.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사진)은 청주 문의에서 태어나 충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를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 입사,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문화와 지명에 관심을 갖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명속의 역사산책(디자인 신화)’이란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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