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터뜨린 막내 동생은 아버지가 탯줄을 자르고 어머니에게 안겨주자 울음을 그쳤다. 부모가 아기를 안아주는 것과 어미 소가 혀로 송아지를 핥아주는 것은 어린 내 눈에 같은 뜻과 속살을 가진 몸짓으로 느껴졌다. 부모님이 아이를 안아주는 것은 같았지만 놀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달랐다. 어머니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거나 손으로 하는 놀이를 주로 했다. 이와 달리 아버지는 동생을 하늘에 던지거나 같이 뒹굴었고 업기보다 목말을 태웠다. 이 때 아버지가 했던 놀이 가운데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불무’ 노래였다.
울음을 터뜨린 막내 동생은 아버지가 탯줄을 자르고 어머니에게 안겨주자 울음을 그쳤다. 부모가 아기를 안아주는 것과 어미 소가 혀로 송아지를 핥아주는 것은 어린 내 눈에 같은 뜻과 속살을 가진 몸짓으로 느껴졌다. 부모님이 아이를 안아주는 것은 같았지만 놀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달랐다. 어머니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거나 손으로 하는 놀이를 주로 했다. 이와 달리 아버지는 동생을 하늘에 던지거나 같이 뒹굴었고 업기보다 목말을 태웠다. 이 때 아버지가 했던 놀이 가운데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불무’ 노래였다.[해오름출판기획]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느 때 같으면 잠에서 깰 무렵 아침 일찍 아버지는 밭에 가시고 아침 준비하는 어머니의 도마 소리만 들렸어야 했는데 웬 일인지 아버지는 물론 옆집 아저씨 목소리까지 들렸다.

무슨 일인가 나가보았더니 우리 집 소가 송아지를 낳고 있었다. 내가 나갔을 때는 막 뒷다리가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태어난 송아지는 온몸에 물기가 있었고 눈을 뜨지 못했다. 어미 소가 기운을 차린 뒤 온몸을 혀로 핥아주니 그제야 송아지는 눈을 뜨고 네 다리를 휘청거리며 일어섰다.

그 뒤에도 어미 소는 송아지가 풀이 죽어 있을 때마다 혀로 핥아주었다. 그러면 송아지는 기운을 차려서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몇 달 뒤 막내 동생이 태어났다. 어머니는 만삭의 몸을 이끌고 아침밥을 준비하다 “애가 나올 것 같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큰 누나에게 물을 끓이게 했고 가위와 세숫대아를 준비하셨다. 15분쯤 지났을까? 아기가 머리부터 나오더니 쑤욱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으앙”하고 울었다.

내 인생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첫 경험이었다. 나는 송아지처럼 막내 동생이 일어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은 땅바닥에 눌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 울음을 터뜨린 막내 동생은 아버지가 탯줄을 자르고 어머니에게 안겨주자 울음을 그쳤다. 부모가 아기를 안아주는 것과 어미 소가 혀로 송아지를 핥아주는 것은 어린 내 눈에 같은 뜻과 속살을 가진 몸짓으로 느껴졌다.

부모님이 아이를 안아주는 것은 같았지만 놀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달랐다. 어머니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거나 손으로 하는 놀이를 주로 했다. 이와 달리 아버지는 동생을 하늘에 던지거나 같이 뒹굴었고 업기보다 목말을 태웠다.

이 때 아버지가 했던 놀이 가운데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불무’ 노래였다.

불무불무 불무야/ 불어라 딱딱 불무야/ 이 불무가 뉘 불무야/ 할아버지 불무로구나/ 한 짝 다리 번쩍 들고/ 두 짝 다리 번쩍 들고/ 불무불무 불무야/ 불어라 딱딱 불무야.

불무불무는 아기의 두 겨드랑이를 잡고서 아기의 두 다리를 번갈아 오르내리게 하면서 불러주는 노래이다.

아버지가 겨드랑이를 잡고 “불무불무” 하기만 해도 막내 동생은 무릎을 굼실거렸다. 그리고 표정은 들떠서 풍선처럼 부풀었다. 나도 아이를 기르면서 불무 놀이를 했는데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불무 노래는 각 지역마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불무불무야’라고 하는 곳도 있고, ‘불아 불아야’, ‘불매 불매 불매야’로 부르는 곳도 있다.

단동십훈에선 불아 불아를 아니 불(不) 버금 아(亞)로 해석, 버금(흉하지)이 아니라는 뜻으로 아기가 가장 소중한 존재라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를 한자풀이 보다 생활에서 갖는 의미로 풀어보고 싶다. 대장간에서 불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바람을 넣는 장치인 ‘풀무’를 발로 밟아주는 행위를 ‘풀무질’이라 한다.

풀무의 옛 말이 ‘불무’이다. 옛날 우리말에는 받침도 없었고 불무질을 ‘부라질’이라고 했다. 15세기 코를 ‘고’, 칼을 ‘갈’이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보면 ‘불무질’의 무는 무엇을 움직이게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불을 움직이게 하는 것, 우리 문화에서 불은 생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래서 제주도 삼신 할망 본풀이를 ‘불도맞이굿’이라 달리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불’은 ‘아기’, ‘인간’, ‘생명’을 뜻한다. 불이 생명이란 뜻과 속살을 같이 하는 것은 남성 생식기를 ‘불알’이라 하고, 남녀 성기 언저리 두둑을 ‘불두덩이’라고 하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말과 문화의 속살을 깊이 파고들 때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하늘 같이 소중한 아기를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걱정하면서 그 생명의 불꽃이 더 힘차게 타오르도록 부채질하는 노래 그것이 바로 ‘불무’ 노래인 것이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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