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형이 앞에서 손을 흔들어주면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렇게 놀다가 발에 힘이 붙기 시작한 열 달 무렵 아이를 일으켜 세워서 본격적인 질라래비 훨훨을 했다.질라래비 훨훨을 하면서 솔뫼가 어떻게 놀이를 하나 그 몸짓을 자세히 살펴봤다.그 결과 이 놀이는 갓난아기의 걷기 연습에서 아주 중요한 뜻과 속살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었다.[해오름출판기획]
가끔은 형이 앞에서 손을 흔들어주면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렇게 놀다가 발에 힘이 붙기 시작한 열 달 무렵 아이를 일으켜 세워서 본격적인 질라래비 훨훨을 했다.질라래비 훨훨을 하면서 솔뫼가 어떻게 놀이를 하나 그 몸짓을 자세히 살펴봤다.그 결과 이 놀이는 갓난아기의 걷기 연습에서 아주 중요한 뜻과 속살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었다.[해오름출판기획]

그것은 우연한 마주침이었다. 햇살이 눈부신 가을 어느 날 답사를 나섰다가 돌이 아직 안돼 보이는 아기가 할머니랑 놀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발견했다.

둘이 서로 흠뻑빠져 얼러주기도 하고 짝짜꿍도 하면서 한참을 그렇게 놀고 있었다. 그 한가하고 평화로운 장면을 아무런 생각 없이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가 갖지 못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아이를 부드러운 눈으로 보고 즐겁게 얼러주며 놀이를 하기는 했지만 할머니가 만들어내는 부드럽고 따뜻한 어울림과 비교하니 딱딱하고 어설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할머니가 평생을 통해 몸에 익혀온 그 몸짓과 손짓, 표정은 아기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내가 하는 몸짓이 이제 막 담은 김치라면 할머니의 몸짓은 잘 익은 김치처럼 자연스럽고 무의식까지 깊이 들어가 아이를 부추기고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할머니가 아기의 두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아기의 두 손을 그대로 잡고 위아래로 흔들면서 노래를 했다.

아기는 할머니 노랫가락과 함께 활짝 웃었고 놀이가 끝나자 다시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질라래비 훨훨’이란 놀이를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솔뫼가 태어난 해였으니 한뫼와는 질라래비 훨훨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솔뫼는 다섯달 밖에 되지 않아 바로 시도할 수 없어 한뫼랑 우선 질라래비 훨훨을 하면서 노는 방법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질라래비 훨훨만 했지만 아이의 요구가 많아지면서 노랫말은 점점 늘어만 갔다.

한뫼는 질라래비 훨훨을 할 때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장소와 사람 이름을 대면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질라래비 훨훨/ 질라래비 훨훨/ 고모네 집에 가자/ 이모네 집에 가자/ 잘라래비 훨훨/ 질라래비 훨훨.

한뫼는 질라래비 훨훨을 할 때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장소와 사람 이름을 대면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누구네 집에 가자하면서 공간에 대한 사랑과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 꿈, 희망 등을 마음껏 드러냈다.

그래서 이 놀이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놀이이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한 애착을 공유하는 놀이가 됐다.

아직 어린 솔뫼에게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 봤다. 무릎에 앉히고 두 팔을 흔들면서 질라래비 훨훨을 불러줬다.

가끔은 형이 앞에서 손을 흔들어주면서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렇게 놀다가 발에 힘이 붙기 시작한 열 달 무렵 아이를 일으켜 세워서 본격적인 질라래비 훨훨을 했다.

질라래비 훨훨을 하면서 솔뫼가 어떻게 놀이를 하나 그 몸짓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 결과 이 놀이는 갓난아기의 걷기 연습에서 아주 중요한 뜻과 속살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이 걸으려면 온몸의 균형과 손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잘라래비 훨훨은 두 단계에 거쳐서 할 수 있는 놀이이다.

아직 걷지 못할 때는 세워 놓고 흔들어주는데 이러한 몸짓은 윗몸과 아랫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 준다.

단동십훈을 말하는 사람들은 ‘질라래비 훨훨’이 한자말 ‘질라비 활활의(疾羅腓 活活議)’에서 나왔다고 하고 서정범 교수는 ‘길오라비 훨훨’이란 말로 플이하면서 ‘길오라비’는 기러기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들강달당처럼 질라래비 훨훨도 오랫동안 한뫼와 솔뫼가 즐겼던 놀이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도 아이들은 아빠랑 어디를 갈 때마다 이 놀이를 하려고 했다. 어렸을 때 아빠와 하나의 마음으로 이어졌던 그 느낌을 다시 되살리고 싶었던 것일까.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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