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엄정면 추평리 개비거리 일원에 비석이나 안내판은 없지만 말없이 흐르는 물길이 충견(忠犬)에 대한 전설을 묵묵히 전해 주고 있다.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 개비거리 일원에 비석이나 안내판은 없지만 말없이 흐르는 물길이 충견(忠犬)에 대한 전설을 묵묵히 전해 주고 있다.

최근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늘고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식용 ‘개고기’에 대한 찬·반 논란이 또다시 뜨겁다.

얼마 전 부산에서 주인을 구하기 위해 멧돼지와 사투를 벌인 충견의 이야기가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 같은 식용 ‘개고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사실 개는 오래 전부터 인간과 같이 생활을 해 온 동물이었고 인간에게는 상당히 이로운 동물이었다.

옛 부터 우리 생활에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갖는 동물 중 하나로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한 데다 인간을 잘 따르고 충성심과 경계심이 다른 어느 동물보다 강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주인을 위하여 헌신했다는 개와 관련된 전설이 여기저기 지명과 함께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지명이 바로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獒樹里)이다. 한자 그대로 개(獒 개오)의 나무(樹 나무수)란 뜻이다. 이곳의 원동산에 전북 민속자료 제1호가 오수리 의견비(義犬碑)이다.

이 의견비의 유래는 고려 시대의 문인 최자(崔滋)가 1230년에 쓴 ‘보한집(補閑集)’에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이곳에 살던 김개인(金蓋仁)이란 사람은 충직하고 총명한 개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동네잔치를 다녀오던 김개인이 술에 취해 오늘날 상리(上里)부근의 풀밭에 잠들었는데 때마침 들불이 일어나 김개인이 누워있는 곳까지 불이 번졌다.

불이 계속 번져오는데도 김개인이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나지 않자, 그가 기르던 개가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들불 위를 뒹굴어 불을 꺼 결국 들불이 주인에게 닿지 않아 김개인은 살았으나 개는 죽고 말았다. 김개인은 잠에서 깨어나 개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음을 알고 몹시 슬퍼하며 개의 주검을 묻어주고 자신의 지팡이를 꽂았다고 한다.

나중에 이 지팡이가 실제 나무로 자라났다고 한다. 이를 기려 훗날 ‘개 오(獒)자’와 ‘나무 수(樹)’를 합해 이 고장의 이름을 ‘오수(獒樹)’라고 부르게 됐다.

이처럼 주인에게 충성하고 의리 있는 개와 관련된 지명으로는 충남 천안시 ‘개목고개’, 전북 고창군 ‘개비골’ 등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주인을 구하였다는 ‘의견(義 의로울의·犬 개견)’과 관련된 지명은 전국에 걸쳐 있다.

충북에도 충주시 엄정면 추평리에 ‘개비거리’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개의 비석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 말엽 이곳 추평리에 방씨 성을 가진 농부가 살고 있었는데 이 농부는 검은 개를 기르고 있었다. 이 개는 방씨를 잘 따르고 방씨는 그 개를 유난히 사랑했다.

어느 해 봄날 방씨는 이웃마을 잔치 집에 갔다가 술을 잔뜩 마시고 기분 좋게 고갯길을 돌아오는데 술이 좀 과했던지 누워서 잠이 들고 말았다.

바로 그때 산 기슭에 바싹 마른 잔디밭에 어디서부터인가 번진 불길이 방씨쪽으로 봄바람을 타고 치닫고 있었다.

이를 보고 방씨를 깨우려 짖던 개는 여전히 코를 골며 잠자는 방씨를 구하려 산 아래 원곡천으로 뛰어들어 털을 적시더니 산으로 뛰어올라 방씨 옆으로 오는 불길을 막느라 몸을 대굴대굴 구르기 시작했다.

물기가 마르자 방씨의 개는 또다시 원곡천을 한걸음에 달려 적시어 갖고 오더니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취중에 놀라 눈을 뜬 방씨는 사방이 불꽃인데 검은 개가 자신의 옷에 엉겨 붙은 불을 끄느라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비벼대는 것을 보았다.

방씨는 옷에 불이 붙기 직전에 얼른 그 장소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개를 불렀으나 재 투성이가 됐던 자신의 개는 끝내 불 밖에서 볼 수 없었다.

그제야 개가 목숨을 바쳐 자신을 구한 것을 안 방씨는 목 놓아 울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명주 한필을 준비하고 석수를 찾아 비석에다 ‘방씨네 충견의 무덤’이란 글씨를 새겨 ‘가래산’ 기슭에다 무덤을 만들고 비석도 세워 줬다.

이후 사람들은 충직한 방씨의 개 비석이 있는 거리라 해 이 일대를 ‘개비거리’라 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그 무덤도 비석도 없어졌으나 충견의 설화가 담긴 ‘개비거리’란 지명으로 남았다.

비록 짐승이지만 자기 목숨을 바쳐 주인을 구한 의견(義犬)의 이야기는 각박한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사진)은 청주 문의에서 태어나 충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를 졸업했다. 현재 문화재보존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청주시 지명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 입사,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문화와 지명에 관심을 갖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명속의 역사산책(디자인 신화)’이란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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