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 충청탑뉴스 충북본부장
신동호 충청탑뉴스 충북본부장

[신동호 칼럼]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보석을 꿰는 것보다 소중하다. 잠자리에 들어, 바쁘게 보낸 하루의 필름을 돌려본다.

새벽에 일어나 무심천 구보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아침식사, 출근, 사무실 업무, 점심식사, 또 기사 쓰고 퇴근, 커피마시고, 전화 주고받고, 대화하고, 메일 주고받고, 상담하고, 글 쓰고 천근같이 무거운 마음을 이불 속에 묻어버린다.

아, 오늘 나와 스친 인연이 얼마인가? 내가 먹고 입고 소비한 귀중한 자원이 얼마인가. 나로 인해 생명을 내 놓은 다른 생명은 얼마인가. 태산 같고, 바다 같고, 하늘같은, 천지만물의 은혜와 보살핌으로 내가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기고만장하다. 이 세상에서 내가 최고인양 거드름을 피우면서 주고 베풀기 보다는 감추고 아끼기에 혈안이 돼 살아오지 않았는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나 밖에 모르는 이기심 모두가 내 마음 같다면 이 세상은 물기 없는 사막, 아수라의 혈투장, 자원이 고갈돼 텅 빈 곳간일 텐데 시냇물 졸졸 흐르고, 생동하는 만물이 어우러지고, 훈훈한 인심이 목화솜 같은 따스함으로 넘치는 것은 마음이 풍요로우며 베푸는 사람이 많다는 반증이다.

내가 욕심과 거만, 고집으로 똘똘 뭉쳐있을 때 천지만물과 사람들은 나를 욕하거나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배려와 사랑, 감사와 자비로 나를 감싸 안아 줘 오늘의 내가 존재하게 했다. 그래서 세상살이에 감사하며 내가 좀 더 전향적으로 변하고, 내가 좀 더 욕심을 버리고, 내가 좀 더 배려하는 실천을 한다면 이 세상은 아름다운 꽃밭이요, 꿀이 흐르는 옥토가 될 것이다.

땅을 기어 다니는 미물은 땅에서 일어나는 일만 감지하지만 하늘을 훨훨 나는 봉황새는 하늘과 땅의 일을 한 눈에 훤히 꿰뚫어 본다. 검은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세상은 검정 일색이요, 파란 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세상은 파랑 일색이다.

이것은 분명 한 커플 씌운 편협 된 마음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경종일 것이다. 원래 이 세상은 무색, 무취, 무미한 청결 그 자체였다.

내가 조금 손해 보는 듯 하는 그 자리, 내가 조금 양보해서 남게 된 그 자리, 내 것을 조금 덜어내 부족한 곳을 채워주는 그 자리, 내가 휴지조각을 줘 깨끗해진 그 자리에, 나보다 못한 사람과 뭇 생명들이 둥지 틀고 살아갈 것이다.

배려하는 마음에서 너그러움이 살아 숨 쉬고 양보하는 마음에서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체득한다. 남의 수고로움에 의해서 내 몸이 유지되듯이 나의 수고로움에 의해서 일체만물이 존재하게 된다.

그러므로 너와 나, 이것과 저것,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닌 하나이다. 동전의 앞면과 뒷면, 손의 바닥과 손등처럼 남을 때리면 맞은 사람이 아프지만 때린 내 마음이 더 많이 아픈 것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심신을 잘 다스리고 유익하게 살면 나도 좋지만 전체가 그 유익함을 함께 누리며 살게 된다. 내가 이웃에게 몰래 쌀과 연탄을 사줬다면 그것을 받은 사람이 배부르고 등 따시게 생활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의 고마워하는 마음이 나에게 전달돼 내 마음의 배가 더 부르고 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환희를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상생(相生)일 것이다. 상생은 만물이 춤을 추며 너와 내가 차별받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 되는 유일한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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