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규 청주나눔교회 목사
김창규 청주나눔교회 목사

 

고광헌 시인은 현재 서울신문 대표이다. 필자가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던 한겨레신문 이사장을 지냈고 현재는 서울신문의 사장이다.

 그는 겸손하고 천상 시인이다. 키가 1m95cm 로 매우 큰 편에 해당한다. 그는 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교사로서도 유명했다. 1985년도인가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그는 촛불시민혁명의 한 가운데에서 광화문 광장을 거의 빠지지 않고 나왔고 한국작가회의 시인이기도 하지만 촛불을 들고 당당하게 한 그룹 조직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포럼시민혁명'이란 단체였다. 이 단체는 보수를 대표하는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과 퇴진을 외쳤다. 끝없이 고뇌하면서 세월호 집회와 각종 집회에 참여, 발언을 해왔다.

 고광헌 시인은 정읍이 고향이다. 정읍은 동학농민혁명의 전초기지였다.  그런 곳에서 자란 시인은 광주지역의 사람들과 '오월의 시'라고 하는 동인을 결성해 활동했다.

 그의 시들은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처럼 저항적인 시인이었다. 창비에서 시집을 내었고 그의 독자들은 그가 큰일을 할 사람으로 일찍이 활동을 주목해왔다.

 이번에 쌍용차 노동자 119명이 전원 복직하게 됐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9년 동안에 30명이 목숨을 끊었다. 필자도 쌍용차 앞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고 서울에서 민중대회가 있을 때마다 참여해 그들을 만난적이 있다.

 고광헌 시인은 실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은 돕는 모임을 만들었다. '손잡고'란 모임이었다. 그래서 생계가 어려운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모금을 해 지원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이 시인 고광헌이다.

 고광헌 시인은 처음에는 한겨레 체육부 기자였다. 그런 그가 한겨레신문 이사장이 되었고 이번에  서울신문 사장이 됐다.

 고광헌 시인은 청주 성공회 수동 성당에서 강연을 한적이 있다. 박근혜 정권이 블랙리스트 등을 만들어 작가와 예술인들을 탄압하고 억압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한국언론의 실상에 대해서 강연을 했다. 대단한 강의였다. 진리는 승리하고 정의는 반드시 이룬다는 안창호 독립운동가의 말이 떠오른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남과 북의 정상들이 판문점에서 두 번 평양에서 한번 만났다. 서울신문의 1면 톱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에서 만나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평양의 회담은 감동적이었다. 능라도 5.1경기장에 7분 동안 15만 평양시민에게 한 강연처럼 고광헌 시인이 부르짓는 정의의 목소리도 시처럼 따뜻하다.

 고광헌 시인, 언론인으로서 책임이 막중하다. 서울에 갈 때마다 프레스센터를 지나간다. 우리들 행사도 이 곳에서 많이 한다. 

 고광헌 시인이 몸담고 있는 서울신문은 진보성향의 한겨레 신문을 앞섰다. 아름다운 청년 시인과 같은 고광헌 시인과 신문사의 발전을 기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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