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바라본 칠금동은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멀리 아파트와 탄금대가 보인다.
멀리서 바라본 칠금동은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멀리 아파트와 탄금대가 보인다.

남북의 화해무드가 무르익으면서 남한과 북한의 영부인이 모두 음악가 출신이란 점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김정숙 여사가 성악을 전공했고 북측 이설주 여사가 음악가로 활동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얼마 전 평양방문 때 두 영부인은 평양 음악종합대학 김원균 명칭 음악종합대학, 예체능 분야 영재교육기관인 만경대 학생 소년궁전을 방문, 오케스트라 공연을 함께 지켜봤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음악을 사랑하며 가꿔왔던 역사가 있었다. 충북지역은 특히 3대 악성(고구려 거문고의 ‘왕산악’, 가야 가야금의 ‘우륵’, 조선 악학궤범 ‘박연’) 가운데 왕산악을 제외하곤 2명이 활동하거나 태어난 음악의 역사를 갖고 있다.

충주시 칠금동은 신라 552년(진흥왕 13) 가야국에서 귀화한 악사(樂士) 우륵이 이곳에서 가야금(琴)을 탔다(彈)는 것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칠금동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당시 금대리(琴臺里)와 옻나무가 많다해 붙여진 지명 칠지동(漆枝洞)의 일부를 병합, 금대(琴臺)와 인근의 칠지(漆枝) 이름을 각각 따서 칠금리라 해 충주시에 편입됐다.

여기서 금대(琴臺)란 거문고를 타던 곳이란 뜻이다. 이 금대가 있던 곳이 현재의 탄금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 탄금대는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우륵(于勒) 악사가 신라에 귀화해 이곳에서 신라의 악사 법지(法知), 계고(階古), 만덕(萬德)의 세 제자에게 가야금을 가르쳤으며, 대문산의 풍취에 취해 가야금을 탔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악성(樂聖) 우륵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 때 가야국의 음악가로서 가실왕의 명을 받아 가야금곡조 12곡을 지은 사람이다. 진흥왕 12년(서기 551년) 쇠퇴해 가는 가야국을 떠나 가야금을 들고 제자 이문과 함께 신라에 투항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받아들여 지금의 충주인 국원 성에 살게 하면서 계고와 법지, 만덕을 보내 음악을 배우도록 했다. 우륵은 조국 가야가 망한 것을 한탄하며 제자들과 함께 이 곳 대문산에 들어왔다.

그는 이곳에서 밤낮으로 마음을 달래며 가야금을 연주했다. 애달픈 그의 음악 소리를 듣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부락이 형성됐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충주 칠금동이다.

남한과 북한의 두 영부인이 앞으로 음악을 매개로 화합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전통음악의 유래가 깃든 남북의 지명에 대한 고증을 통한 화합행사도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법학박사

▷신경직(사진)은 청주 문의에서 태어나 충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를 졸업했다. 현재 문화재보존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청주시 지명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 입사,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문화와 지명에 관심을 갖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명속의 역사산책(디자인 신화)’이란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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