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자취가 남아있는 제천 백운면 방학리 이궁터와 배재고개가 있는 방학리 마을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자취가 남아있는 제천 백운면 방학리 이궁터와 배재고개가 있는 방학리 마을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남북화해의 상징인 남북철도가 지난 11월 30일 도라산역을 출발, 북한지역 철도 2600km를 달리는 대장정에 들어갔다.

북한 철도(철로)의 남북공동조사를 위해 도라산역에서 환송행사를 마치고 북쪽으로 열차가 출발했다.

남북 철도의 시발점이 된 도라산역(都羅山驛)의 지명에도 남다른 사연이 녹아 있다. 도라산은 파주시 장단면과 군내면에 걸쳐 있는 156m 높이의 작은 봉우리다.

이 도라산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 도라산리(都羅山里)이고 역 이름도 마을 지명을 따 도라산역이라 했다.

파주시지 등에 따르면 도라산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935년 국운을 돌이킬 수 없다고 판단,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고 신라 천년 사직을 고려에 양국(讓國)한 데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고려의 태조는 너무나 기뻐하며 신하들을 이끌고 송도(개성)를 찾아 온 경순왕에게 첫째 딸인 낙랑공주와 혼인시켜 부마로 삼고 거주하게 했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경순왕은 늘 고향 경주를 그리워했다. 시름에 빠진 경순왕을 지켜보던 고려의 낙랑공주는 경주가 잘 보이는 남쪽 산 중턱에 ‘영수암’이란 암자를 지어 경순왕에 선물했다.

경순왕은 매일 이 곳에 올라 신라(羅)의 도읍(都) 경주를 그리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고 후세사람들은 이곳을 ‘도라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경순왕과 관련 이궁터가 충북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에도 전해진다. 방학리에는 경순황이 머물렀을 때 만든 이궁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궁(離宮)은 임금이 머물던 터를 말하는데 이곳 터 이름을 동경저(東京邸, 경주)라고 한다. 경순왕의 이궁터지는 일국의 왕이 머물렀던 곳으로 보기에는 너무 초라하기 그지없어 이곳이 이궁터인지 의문이 갈 정도다.

그러나 이곳 마을 이름을 궁터마을(궁평)이라고 하여 경순왕으로 인해 유래된 지명임을 알려주고 있다.

또 이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원주시 귀래면으로 넘어가는 곳에 배재고개가 있다. 이 배재고개는 경순왕이 개성으로 갈 때 신라천년사직을 기리고 백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경주를 향해 절을 했던 곳이라 하여 배령(拜嶺), 배치(拜峙), 배째고개 등이라 전한다.

이 고개 넘어 원주시 귀래면(貴來面)도 귀한 분(貴人)이 오셨다고 해 붙여진 지명인데 귀한 분이 바로 경순왕으로 전해진다.

어렵게 조성된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부디 이번 남북철도 철로 복원사업으로 인해 더욱 공고히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사진)은 청주 문의에서 태어나 충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를 졸업했다. 현재 문화재보존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청주시 지명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 입사,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문화와 지명에 관심을 갖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명속의 역사산책(디자인 신화)’이란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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