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과 우주가 상응하는 생활을 했던 것은 어린 시절이었다. 그 때는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잤다. 어두운 그믐날 밤에는 이웃집으로 놀러가지 않았지만 보름에는 밝은 달빛 아래에서 마실을 가고 늦게까지 놀았다. 좌구산천문대에서 바라본 보름달[사진제공=좌구산천문대]
내 몸과 우주가 상응하는 생활을 했던 것은 어린 시절이었다. 그 때는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잤다. 어두운 그믐날 밤에는 이웃집으로 놀러가지 않았지만 보름에는 밝은 달빛 아래에서 마실을 가고 늦게까지 놀았다. 좌구산천문대에서 바라본 보름달[사진제공=좌구산천문대]

[충북메이커스=문재현의 별자리 이야기-3.]내 몸과 우주가 상응하는 생활을 했던 것은 어린 시절이었다. 그 때는 아침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잤다.

어두운 그믐날 밤에는 이웃집으로 놀러가지 않았지만 보름에는 밝은 달빛 아래에서 마실을 가고 늦게까지 놀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는 모두 달과 함께 그 빛을 받으며 돌아갔다. 달밤에 여자애들은 그렇게 조용하게 집으로 돌아갔는지 모르겠지만 남자애들은 훨씬 더 소란스러웠다.

어느 날 집으로 가는데 달이 나를 따라왔다. 다른 친구들도 느끼나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모두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놀이가 시작됐다. 모두가 함께 모여 있다가 동시에 집으로 흩어지면서 모두 다 한마디씩 소리치는 놀이였다.

“야, 달이 나를 따라온다.” “아니야, 나를 따라와.”

마치 달이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모두를 따라가는 현상을 알게 된 뒤에는 보름달 아래 놀다가 헤어질 때마다 이 놀이를 즐겼다.

이름도 붙였다. ‘달 따가는 놀이’였다. 그렇게 달에 젖어 생활하면서 햇볕과 달빛의 차이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말 가운데 달볕이란 말이 없는 것은 땡볕, 뙤약볕이란 말이 갖고 있는 뜨거운 느낌의 속살이 어슴푸레하면서 서늘한 달빛의 느낌과는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세대는 달빛 아래에서 신나게 놀았을 때만 얻을 수 있는 풍경 한 자락을 갖고 있다.

우리네 마을 생활의 모든 장단이 달과 연결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요한 명절이나 세시풍속은 달의 장단에 따라 이뤄졌다.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날도 ‘삭망례’라고 해서 초하루와 보름에 있었고, 중요한 명절들도 보름에 많다.

어른들의 약속도 그믐이나 보름 등 달의 주기에 따라 이뤄졌다. 하지만 우리 학교를 다닐 때는 누구도 이러한 우리의 삶과 문화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 선생님들은 마을 어른들을 ‘농투산이 무지렁이’라고 얕보았고 마을 문화를 야만적이고 미개하다고 비웃었다.

당연히 학교 교육이나 학문을 통해서는 어렸을 때 경험을 깊이 있게 성찰하고 구조화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내가 달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 것은 우연히 달력을 보다가 궁금한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역법을 공부하다가 영어로 ‘month’란 단어가 ‘moon’으로부터 갈라져 나왔고 둘 다 ‘측정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mensis’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토박이말 달에도 그런 뜻이 있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측정하다란 말에 대응하는 우리 토박이말에는 ‘재다’가 있다.

그 말이 달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언젠가 추곡 수매를 하기 위해서 쌀의 무게를 잴 때 아버지가 ‘저울로 달아보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아하!’하고 무릎을 쳤다.

높은 곳에 무엇을 매거나 붙여 떨어지지 않게 할 때 ‘달다’란 말을 쓴다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단추도 달고 사과도 달려 있고 저울에도 물건을 달고, 하늘에 걸려 있는 달이 그 모든 말들의 뿌리였던 것이다.

고구려의 말 ‘달(達)’은 땅을 뜻할 뿐만 아니라 ‘높고 크다’는 뜻을 갖고 있어 하늘의 달과 뚜렷한 관계가 있었다.

고조선의 ‘아사달’ 역시 같은 속살을 갖고 있어서 고조선과 고구려 사이에 문화적 연속성이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조선과 고구려 시기에는 아직 받침 글자가 없어서 본디 글자 모습이 ‘다라’ 또는 ‘더러’였고, 아사달 역시 실제 발음은 ‘아사다라’였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말 ‘땅’은 ‘다라→땅’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달이란 낱말은 참으로 많은 가지를 뻗었다. 양달, 응달, 다락논, 다락말, 다락밭 등등. 양달과 응달은 한자말과 결합하기 했지만 햇빛이 비치는 땅과 그늘지는 땅을 뜻한다.

다락이란 말은 높은 곳에 있는 땅을 말한다. 달과 이름씨 끝인 악이 결합된 것이다. 다락논은 산골짜기에 계단처럼 만든 작은 논배미를 말하고, 다락말은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다.

부엌과 천장 사이에 이층처럼 만들어 물건을 놓아두는 곳도 다락이라고 한다.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땅을 말하는 ‘비탈’ 역시 ‘빗+달’로 이뤄진 말이다.

이렇게 달과 땅에 관한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엔가 달과 땅, 딸이 같은 뿌리를 갖고 있는 말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옛날 사람들은 비슷한 것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감, 주술적 사고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농경신은 유화부인이나 테메테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땅과 곡물을 관장하는 여성 신이었고 하늘에 있는 달의 신이기도 했다.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여성은 씨앗을 심으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땅과 같은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옛말 ‘다라’는 정치적인 뜻으로 가지를 뻗어나갔다. ‘다스리다’는 말이 그것으로 옛날에는 시간은 하늘의 뜻이고 하늘의 뜻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준다는 생각과 함께 땅을 분배하고 다스리는 것이 임금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깊게 탐색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문화 안에서 달이 가진 뜻과 속살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세시풍속,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와 놀이 속에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든 문화는 자신의 독자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신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관계를 이루는 장소와 인간관계로부터 삶의 지평을 열어나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조건이고 권리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참다운 실천 인문학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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