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사진)는 지금은 한적한 시골의 마을이지만 한 때 고려의 공민왕이 머물던 곳이었다.
충북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사진)는 지금은 한적한 시골의 마을이지만 한 때 고려의 공민왕이 머물던 곳이었다.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 마을 표지석.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 마을 표지석.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 마을 자랑비.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 마을 자랑비.

[충북메이커스=신경직의 지명이야기-23.]얼마 전 충북의 시민단체에서 주관한 ‘평화‧통일비전 사회적 대화를 위한 충북시민회의’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행사로 강화도 통일기행 행사를 개최한 바 있다.

북한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다 볼 수 있는 강화도 통일전망대 등을 방문하면서 평화 통일을 기원하기 위한 행사였다.

이 행사에 시민단체 회원 30여명이 참가해 강화도의 역사유적을 돌아보며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고난을 이겨낸 역사의 흔적을 간직한 섬이다. 고려 때는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이전, 국토를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저항했던 곳이다.

당시 궁궐 등 관청이 들어선 곳이 현재의 강화읍 관청리(官廳里)이다. 임금이 거처하던 궁궐이나 관청이 있어 부르게 된 지명이다.

이곳 관청리 궁터에는 고려 고종(1232년) 때 강화천도와 함께 세워진 동헌과 이방청(吏房廳)만이 남아 당시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고장 충북에도 역대 임금들이 머물면서 생겨난 지명들이 적잖게 남아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보은군 마로면의 관기리(官基里)이다.

이곳 관기리는 1361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으로부터 피해 지금의 안동인 복주에 머물다 홍건적을 물리치고 환궁하던 중 30일간 머물던 곳이다.

이때 공민왕이 인근 경북 상주를 경유해 청주를 거쳐 개성으로 돌아갈 때 보은군 마로면의 소여리와 송현리 사이의 '왕래재’를 넘어 관기리에 묵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관기리는 한 때 ‘왕(王)이 왔다(來)’ 해 ‘왕래재’란 지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왕래재 지명을 따 조선말까지 행정지명을 왕래면(旺來面)으로 정하기도 했다. 이 왕래면이 일제에 의해 현재의 마로면(馬老面)으로 변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민왕의 어가 행렬로 붙여진 이름은 이곳 관기리뿐만이 아니다. 보은군 마로면 오천리(梧川里)에도 여러 이설이 있지만 공민왕과 관련된 유래가 전해져 온다.

오천리는 공민왕이 지나갔다 해 본래 오군래(吾君來)라고 불리었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오군래→오구내→오그내로 변하게 된다.

이후 오천리(梧川里)란 한자어로 불리게 된다. 아마도 지명이름을 한자어로 기록하면서 뜻마저 변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외에도 마로면 주변에는 공민왕이 넘었다는 왕래재, 대왕산, 태자봉이 마을을 둘러싸고 우뚝서 있어 공민왕의 전설을 입증하고 있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樓橋里)에도 공민왕의 전설이 전해온다. 공민왕 1361년 홍건적이 침입하자 공민왕은 인근의 마니산성으로 피난했는데 인근 천태산 쪽에서 낭낭한 종소리가 울려 퍼져 나왔다고 한다.

불심으로 외침을 물리치고자 했던 공민왕은 이 종소리가 울려온 절에서 아마도 ‘국가와 국민의 평안함’을 빌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천태산으로 향하는 길은 마니산성과 국청사를 가로지르는 큰 개울로 막혀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

이 같은 공민왕의 마음을 알아차린 대신들과 마을주민들은 산에 올라 칡넝쿨을 걷어 와 새끼줄처럼 꼬아서 ‘흔들다리(구름다리)’를 만들었다.

이렇게 완성된 구름다리를 밟고 공민왕은 당시 국청사 부처님 앞에 나아가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국청사는 공민왕이 다녀간 뒤 왕이 ‘나라와 백성들의 편안함을 빌었다’하여 편안할 영(寧)자 나라 국(國)자를 써서 영국사(寧國寺)로 고쳐 부르기 시작 했다.

대신들의 도움으로 공민왕이 건넌 구름다리(칡넝쿨 다리)가 있었던 마을을 누교리(樓橋里)라 부르기 시작했다.

강화도 관청리와 충북의 관기리는 고려의 왕들이 피난하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난국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염원했던 이들 지명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 본다.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법학박사

▷신경직(사진)은 청주 문의에서 태어나 충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를 졸업했다. 현재 문화재보존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청주시 지명위원으로 활동중이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 입사,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문화와 지명에 관심을 갖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명속의 역사산책(디자인 신화)’이란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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