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중묘 청룡도(동방청룡 칠수).
강서중묘 청룡도(동방청룡 칠수).

[충북메이커스-문재현의 별자리이야기-5.]모내기 한 논에 일주일째 비가 오지 않으면 논물이 마르고 열흘이 지나면 논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지곤 한다.

동네 아이들이야 개의치 않고 골목에서 신나게 뛰놀면 됐지만 어른들은 타들어가는 모를 보며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솥단지 같은 것을 들고 마을 뒷산 산꼭대기에 올라 춤을 추며 비가 오길 바라는 기우제를 지냈다.

며칠이 지나도 비가오지 않으면 이번엔 동네아주머니들이 각자 키나 체 같은 것을 들고 마을 서쪽으로 5리쯤 떨어진 금강 변으로 가 물을 뿌리며 또 한 번 기우제를 지냈다.

지금이야 그것이 기우제인 줄 알고 있지만 당시 어머니가 ‘용왕님이 꼴 보기 싫어 비를 내려주길 바라는 의식’이란 설명을 해 주시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어머니의 말이 당시 허황되게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 문화의 뿌리를 중국과 우리가 공유하고 있다면 중국의 기록이나 민간 속담을 통해서 우리 옛 신앙의 모습을 부분적으로 복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용과 관련된 문화적인 자료가 ‘삼국유사’에 실린 기사와 사찰연기담, 민간신앙으로 남아 있다.

이와 달리 중국은 그와 관련된 자료를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갖고 있어서 우리 옛 용 신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옛 중국인들은 봄에 ‘동방청룡’이 자신의 머리를 드러내는 음력 2월이 되면 밭갈이를 하고 종자를 뿌렸다. 이때는 벌레나 개구리, 뱀도 겨울잠을 자던 굴을 떠나 밖으로 나온다.

이렇게 동방청룡의 별자리가 떠오르면서 생명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고 옛날 중국 사람들은 이 별자리에 모든 생명을 관장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청룡 별자리는 기우제하고도 관련이 있다. 음력 2월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동방청룡은 음력 4월 초저녁이면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다.

이때가 중국의 장마철이다. 이때 비가 오지 않으면 농작물이 다 타버리기 때문에 기우제를 지낸다. 그 기우제의 대상이 동방청룡이었다.

중국인들은 동방청룡 별자리가 하늘 한 가운데 가장 높이 떠 있을 때 곡식의 성장이 왕성해지는 것에도 특별한 뜻과 속살이 있다고 믿었다.

하늘 높이 떠오르는 것을 동방청룡의 힘이 가장 커지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을이 돼 동방청룡의 별자리가 서쪽 하늘로 기울어지면 청룡 별자리는 힘을 잃어 더 이상 곡식을 키울 수 없다고 믿었다.

용이 생명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는 기운이 있다고 보는 것은 옛 동이족의 땅에서 생겨나 황하 유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황하 상류의 한족들은 하류에 사는 동이족의 영향을 받으면서 용과 관련된 신앙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복양시 서수파 유적의 용이다.

한반도의 용 문화는 중국의 용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중국 문화가 우리의 민간 신앙에 영향을 미치기 전이었던 삼한시대에도 용 문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남원의 ‘용마놀이’이다. 삼한 시대 이전으로 소급할 수 있는 용마놀이는 섣달 그믐부터 준비해서 정월 보름날에 하는 대동놀이다.

대나무와 나무를 재료로 50~100m 정도의 크기로 남쪽은 백룡, 북쪽은 청룡을 만든다. 장정들은 이 용을 어느 골목이나 누빌 수 있게 수레에 싣고 여러 가지 놀이로 승부를 겨루었다. 백룡이 승리하면 풍년이 들고 청룡이 승리하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옛날에 남원은 용성, 용국이라 했다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미르다’라고 했을 것이다. 우리말 미리내와 중국말인 은하수를 비교해 볼 때 미리내란 말이 훨씬 더 원초적이고 신화적인 의미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있다고 믿었고 그 하늘나라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강 이름을 ‘미리내’라고 불렀다.

미리내에 살고 있는 용들 가운데 착한용이 이기면 비를 내려주지만 나쁜 용이 이기면 가뭄이나 홍수가 일어난다.

이 우주의 드라마는 해마다 되풀이된다. 그렇게 되풀이되는 시간의 마디에서 사람들은 이 우주의 드라마에 참여해 착한용을 도우려고 했다.

착한용이 이길 수 있도록 북돋우는 놀이가 줄다리기와 용마놀이 같은 대농놀이였을 것이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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