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 별자리는 하느님의 손자이면서 하백의 외손이란 관념에 맞는 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손자라면 북극성 주변에 있어야 한다. 하백의 외손이기 때문에 은하수와도 관련이 있어야 한다.[사진제공=증평좌구산천문대]
주몽 별자리는 하느님의 손자이면서 하백의 외손이란 관념에 맞는 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손자라면 북극성 주변에 있어야 한다. 하백의 외손이기 때문에 은하수와도 관련이 있어야 한다.[사진제공=증평좌구산천문대]
덕화리 1호분 내부 별자리 모사도.[김일권  2008년]
덕화리 1호분 내부 별자리 모사도.[김일권 2008년]

[충북메이커스=문재현의 별자리이야기-6.]주몽 신화와 별자리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고구려 고분벽화를 다시 살펴봤다. 1990년대 중반에도 고구려 고분벽화를 공부한 적이 있다. 그때 관심은 민속에 관한 것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집과 옷, 생활도구 등을 통해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으려 했다.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 고분벽화는 105기인데 별자리가 그려진 고분은 25개이다. 그 가운데 덕화리 1호분이 흥미로웠다. 덕화리 1호분을 살펴보니 무덤 한가운데 연꽃이 있고 북쪽에는 북두칠성, 남쪽에는 남두육성, 동쪽에는 삼족오가 그려진 해, 서쪽에는 옥토끼와 두꺼비가 그려져 있는 달이 있다.

이 벽화를 보면서 고구려인들은 이러한 별자리의 배치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주몽 신화가 어떻게 이 그림에 담겨 있는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북두칠성이 하느님 또는 하느님이 있는 곳을 상징하는 별자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해와 달 그림도 해모수와 유화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남두육성이 어떠한 뜻과 속살을 갖고 있는 알아내기가 어려웠다.

이리저리 생각하다 ‘천문유초’를 읽으면서 실마리를 잡았다. 옛 천문학에선 어떤 별자리에서 해와 달, 행성들이 만날 때 ‘범했다’는 말을 쓴다. 아들의 도움으로 별자리 프로그램인 스텔라리움을 돌려보니 고구려 수신제가 벌어지던 음력 구월 그믐날 해와 달은 구리집 저수(천칭자리)에서 만나고 있었다.

한두 해가 아니라 고구려의 전 시기를 통해서 그랬다. 고구려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저수 부근에서 해와 달의 신성한 혼인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고구려의 왕실이 그러한 천문학적 사건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믿었을 것이다.

신화로 보나 벽화 그림으로 보나 해모수와 유화의 천문학적 위상은 뚜렷했다. 문제는 주몽이었다. 고구려인들에게는 당연히 주몽도 하늘의 별자리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벽화에서 주몽 별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주몽 별자리는 하느님의 손자이면서 하백의 외손이란 관념에 맞는 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손자라면 북극성 주변에 있어야 한다. 하백의 외손이기 때문에 은하수와도 관련이 있어야 한다.

주극성 가운데 그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별자리가 과연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하다가 그 실마리를 덕흥리 고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덕흥리 고분벽화의 별자리들은 아름답고 다채로웠다.

견우와 직녀 그림도 있었고 오행성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천장의 동, 서, 남, 북에 그려진 많은 별자리 가운데 나의 관심을 끈 것은 V자와 W자 형태의 별자리였다.

그 두 별자리를 언뜻 보기에 서양 별자리의 케페우스와 카시오페이아를 닮았다. 두 별자리가 모두 주극성이기 때문에 주몽 별자리의 두 가지 조건 가운데 한 가지 조건은 이미 충족하고 있었다.

은하수와는 어떤 관계를 갖고 있을까 찾아봤더니 두 별자리 다 은하수에 걸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 확인해 본 것이 방향이다. 동쪽이 남성을 뜻하는 V자형 별자리로 주몽 별자리란 확신을 가졌다. 바로 아래에는 삼족오가 그려진 해와 그 옆의 목성은 V자형 별자리가 주몽 별자리란 것을 뒷받침해줬다.

나중에 전관수의 ‘주몽 신화와 고대 천문학적 연구’를 보니 그도 역시 V자형 별자리를 케페우스이면서 주몽 별자리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는 W형 별자리는 서양의 카시오페이아자리이면서 주몽의 활이 하늘의 별자리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봤다.

여기서부터 나와 전관수의 생각이 달라진다. 그 별자리가 주몽의 활이라면 동쪽에 주몽과 함께 그려져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두꺼비가 그려진 달 바로 위에 있는 W자형 별자리는 유화부인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전관수는 이 두 별자리를 통해 고구려 천문학에 끼친 서양 천문학의 영향을 찾으려고 한다. 고구려가 중국을 통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서양의 별자리를 받아들였다고 보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덕흥리 고분벽화는 광개토대왕의 재위기간인 408년에 만들어졌다. 모두가 알다시피 광개토대왕은 군사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외교적인 역량도 탁월했던 왕이다. 돌궐과 거란, 사막에 사는 부족들과 독자적인 외교관계를 맺었고 그 과정에서 서양 별자리를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왕권 강화를 위한 상징이 필요했던 광개토대왕이 서양 별자리 가운데 케페우스와 카시오페이아를 선택해 주몽과 유화부인이라고 이름을 지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중위도에 있는 나라에선 누구든지 그 별자리에 자신들의 삶이 담긴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유화부인은 천제의 며느리이므로 주극성으로 자리 잡을 자격이 있다.

하백의 딸이란 정체성도 담아야 했다. 따라서 주극성과 은하수에 걸쳐 있는 W자형 모양의 별자리에서 유화부인을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서 아마테라스가 자신의 손자인 니니기를 통해 벼이삭을 내려줬다고 믿었듯이 곡모신인 하늘의 유화부인이 곡식을 내려줬다고 믿는다면 왕실에 대한 백성들의 존경심과 일체감은 더 커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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