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차문화로, 미국은 커피문화로 문화적 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각성작용인 강한 커피의 활력이 미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문화로, 차는 여유 있고 쉼을 강조하는 문화로 영국을 이끌어 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영국은 차문화로, 미국은 커피문화로 문화적 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각성작용인 강한 커피의 활력이 미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문화로, 차는 여유 있고 쉼을 강조하는 문화로 영국을 이끌어 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숲 해설가로 활동 중인 지인께서 커피 재배를 해보시겠다더니 청주 미동산 수목원 인근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기어이 커피를 생산한다고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숲 해설가로 활동 중인 지인께서 커피 재배를 해보시겠다더니 청주 미동산 수목원 인근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기어이 커피를 생산한다고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충북메이커스=이광희의 나무인문학-11.]숲 해설가로 활동 중인 지인께서 커피 재배를 해보시겠다더니 청주 미동산 수목원 인근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기어이 커피를 생산한다고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물론 경제성이 적어 커피묘목 판매로 수익원을 변경하기는 했으나 참 대단한 도전을 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처럼 우리나라 전국 곳곳에서 이런 무모한(?) 도전을 하시는 커피농가가 생겨나고 있는 중입니다. 드디어 우리나라도 커피생산국이 되는 건가요?(웃음)

재미있게 읽은 ‘커피의 세계사’에 따르면 인류가 마시는 하루 커피 양이 약 25억 잔입니다. 물을 하루 약 68억 잔 마산다고 하니 적잖은 양의 커피를 섭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차 잎은 한 잔당 사용분량이 약 2g인데 비해 커피는 약 10g임을 고려하면 원료의 총 소비량에서는 차를 웃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차는 중국문화권에서는 오랜 기간 음용돼 왔던 기호식품이자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커피가 차를 능가 할 정도로 많이 소비하는 시대로 진입한 것입니다.

누군가 석유란 액체보다 커피가 더 비싸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은 커피의 시대일까요? 아니면 여전히 차의 시대일까요? 한 때 다도는 제게 문화이자 생활이었습니다.

지금 커피숍은 문화현상입니다. 공부도, 만남과 대화도, 심지어 거래와 개인사업도 커피숍을 활용합니다.

커피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스타벅스의 문화를 판매한다’는 기업의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선비들 사이에 차담 오가던 다도문화는 동양문화의 정점이었습니다.

이제는 커피의 시대일까요. 그래서 오늘은 커피와 차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커피는 서기 6세기경 에티오피아 커피 산지인 카파(Kaffa)란 지역 이름에서 유래돼 아라비아로 건너갔습니다.

이슬람 율법학자들이 졸음을 쫒기 위해 약으로 쓰던 커피는 기독교의 와인과 함께 양대 종교를 대표하는 음료였습니다. ‘황금알’을 낳는 커피나무의 반출을 철저히 막았던 예멘의 유대 상인들은 커피 독점 공급을 위해 커피의 수출항을 아리비아 반도 남단의 모카 항구 한 곳으로 정했습니다.

지금도 커피모카란 말이 커피종류로 쓰이고 있을 정도입니다. 15세기 콘스탄티노플에 커피가 소개되고 최초의 커피하우스 카페하네가 개설된 이후, 유럽으로 전파된 커피는 17세기 50만이 살던 영국런던에 3000개의 커피하우스가 들어서게 될 정도로 성업을 이룹니다.

다만 이 당시의 시민토론의 장이었던 커피하우스는 남성전용이었고 여성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금녀의 구역이었습니다.

결국 이 때문에 영국은 여성동반이 가능한 홍차의 집 ‘티가든’의 탄생과 함께 홍차의 나라로 변화하게 됩니다.

해상무역의 시대 커피는 아라비아에서만 자라는 돈이 되는 품귀나무였습니다. 1600년 인도의 승려 바바부단은 메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오던 중 이집트의 커피농장에서 종자 몇 개를 몰래 들여와 인도남부에서 재배에 성공하여 우리로 치자면 인도판 문익점의 역할을 합니다.

이후 커피나무는 인도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서 재배되어 세계 커피시장의 중요지위를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인도 등지에 녹병이 발병해 순식간에 커피나무가 괴멸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때 발견한 것이 녹병에 강한 로부스타종입니다.

커피 품종은 전체 생산량의 98%가 아라비카와 로부스타(2%는 리베리카) 품종인데 로부스타는 아라비카에 비해 쓴맛과 탄내가 강해서 섬세한 산미와 은은한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거친 종이었습니다.

녹병을 극복한 구세주 로부스타를 아라비카와 교배해 둘의 장점을 지닌 교배품종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된 것은 말 할 필요가 없겠죠. 그러나 커피나무의 염색체는 통상 22개인데 반해 아라비카종만 특이하게 44개인 변종이었습니다. 교배품종이 불가능했던 겁니다.

결국 1912년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로부스타종을 실용적 가치 없음으로 판단하고 거래 대상외 품종으로 분류하면서 인도네시아 커피산업이 바닥으로 내팽겨쳐지게 되었습니다.

커피 역사의 우여곡절 끝에 현재 아라비카는 원두커피의 주원료로, 로부스타는 대개 인스턴트커피 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로부스타는 온도변화와 병충해에 강하고 씨만 뿌려놓아도 잘 자라 생산비가 적게 듭니다.

이에 비해 아라비카는 냉해와 병충해에 약해 생산비가 높게 드는데다 해발 60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라기 때문에 주로 중남미에서 재배됩니다. 로부스타는 해수면과 비슷한 평지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베트남 등에서 많이 재배됩니다.

브라질은 두 품종 모두 재배되면서 전 세계 커피의 삼분의 일을 공급합니다. 브라질은 1900년대 초반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80%를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커피나무가 7~8년쯤 재배되고 나면 지력이 다해 토양이 생명력을 잃게 되는데 있습니다. 당연히 원주민들은 돈이 되는 커피재배에만 힘을 쏟다가 기아에 허덕이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선진국에서 팔리는 커피는 산지가격의 200배 전후한 가격상승을 불러오게 됩니다. 다음백과에 의하면, 에티오피아에서 300원에 구입한 원두 1㎏으로 스타벅스는 소비자들에게 25만원을 웃도는 가격으로 팔아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합니다.

시민단체들의 직거래 공정 무역에 의한 커피의 ‘착한 가격’이 거론되는 이유입니다.

얼마 전 인기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나오는 고종황제를 비롯한 주인공들이 ‘가베’를 즐겨 마시던 모습이 방영되었습니다. 이러저러한 자료에서도 일본이 일으킨 을미사변으로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 숭늉대신 커피를 권한 것이 고종이 커피를 즐겨마시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부터 다방이 생겨나기 시작, 지금에 이르게 됩니다. 커피업계 및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11조7000억으로 2006년 3조원대에서 무려 세배 이상의 성장을 했고, 전국 커피전문점은 7만3000여개, 1인당 연간 512잔을 마시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이 중 커피믹스 130억 잔, 원두커피 48억 잔, 캔 커피 40억 잔, 인스턴트커피 31억 잔, 인스턴트원두커피 16억 잔으로 10년 전과 비교해서 커피 잔 수 증가폭에 비해 시장규모가 더 커진 것은 단가가 비싼 원두커피 시장이 확대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초반에 인스턴트, 믹스커피가 강세였으나 커피의 고급화 다양화 추세로 5년 사이 2.6배가 성장했습니다.

‘일상이 다반사(茶飯事)’라는 말은 우리네 사는데 있어 일상적으로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말인데 차 마시는 일이 바로 이렇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약식 제사지내는 일도 차례(茶禮)라 하고, 불교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육법공양으로 차올리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차담(茶啖)이라 하고 찻집까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차 마시는 일은 우리네 일상 문화 속에 늘 있어 왔던 겁니다.

차는 원래 중국 쓰촨성의 티베트 경계 산악지대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림학계 박상진 박사의 글에서 ‘삼국사기’에 실린 신라 흥덕왕 3년(828)의 기록을 근거로 “당나라에 갔다가 귀국한 사신 대렴이 차나무 씨를 가지고 왔다. 왕은 그것을 지리산에 심게 했다”고 하며 이 때부터 차나무를 재배하여 지금은 경남 남부지대에 야생으로 자라는 차나무가 있을 정도입니다.

중국 문화권의 차는 1610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본격적으로 유럽에 수입하면서 본격화 됩니다. 차는 기본적으로 녹차와 우롱차, 홍차 등 세 종류가 있습니다.

찻잎은 온도·습도에 의해 발효되는데 발효하지 않은 채 건조시킨 차를 홍차라 하고 반쯤 발효시킨 것을 우롱차라고 합니다.

차를 햇볕에 말리고 덕어 효소를 없애면 장기간 녹색을 유지하여 녹차를 만드는 것이지요. 애초 수출되던 녹차가 17세기 들어와 배로 수입하는 과정에서 적도의 태양열을 받아 녹차 잎이 자연발효 되어 홍차가 되었는데 의외로 그 맛이 좋아 영국과 네덜란드사람들이 홍차를 즐겨 마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의 차를 수출하는 항구의 이름이 그 지방사투리로 테이(Tei)항구였는데 여기에서 티(Tea)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주 수입원이었던 차나무의 묘목반출을 금했던 중국의 차 수출 독점은 찻값을 지불하기 어려웠던 영국에 의해 아편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네덜란드 유대인 야콥센이 목숨을 걸고 차 묘목을 몰래 반출해 1828년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경작에 성공하여 재배되기도 했습니다.

한 때 병충해로 몰락한 스리랑카의 커피농장에 차나무를 경작해 성공하면서 스리랑카는 저렴하고 품질 좋은 차의 대량 생산지로 떠오르면서 중국이 독점하던 녹차산업은 몰락하게 됩니다. 지금도 스리랑카라는 지명으로 만들어진 실론차는 홍차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지요.

대항해시대 식민지를 확장해가던 시절 미국은 차를 주로 음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차에 세금을 부과하면서 이에 대한 항의로 인디언으로 변장한 미국인들이 영국 동인도회사 배에 실려 있던 차를 모두 바다에 던져 버린 사건으로 ‘보스턴 차사건’이 생기고 결국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됩니다.

물론 이 전쟁으로 미국은 독립을 이루고 미국인들은 차대신 커피를 주로 애용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영국은 차문화로, 미국은 커피문화로 문화적 차이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각성작용인 강한 커피의 활력이 미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문화로, 차는 여유 있고 쉼을 강조하는 문화로 영국을 이끌어 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녹차산업은 1960년대 말 보성, 고흥, 영암 등지에 차밭을 조성하면서 시작됐고, 1990년대 본격화돼 2000년대 중반까지 급격한 상승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2007년 시중에서 유통되는 녹차티백에서 고독성 농약 성분인 파라티온이 검출되었다는 보도 이후 국내 녹차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농약파문과 인건비의 상승으로 녹차산업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재배면적도 줄어들었던 거지요. 그 후 보성녹차를 중심으로 한 녹차산업 활성화 정책으로 극복하기는 하였으나 저렴한 수입품이 범람하면서 경쟁력은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보성 녹차 밭 관광객은 매년 1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관광 명소화 되어있습니다. 커피와 차는 인류의 역사를 뒤흔들만한 사건의 중심에 자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여전히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양대 기호식품으로 음용되고 있으며 우리네 중요한 문화의 일부로 일상화 되었습니다. 역사의 그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바쳐졌고 여전히 고된 노동과 열악한 임금으로 재배되고 있습니다.

한 잔의 차와 커피 속에 담긴 나름의 역사와 노고들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하루 되시면 어떨까요? 이 글 쓰는 와중에도 커피를 마시는 중입니다.


▷이광희 숲 해설가·전 충북도의원은 성남고와 충북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충북대 대학원에서 산림학과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한국청년연합회(KYC) 공동대표와 민화협 청년위원장, 산남두꺼비마을신문 편집장, 충북숲해설가협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이근식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대변인, 제9대, 10대 재선 충북도의원을 지내고 지난해 6.13지방선거 민주당 청주시장예비후보로 활약했다. 최근 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저서로 '나는 지방의원이다', '이광희가 들려주는 우리 동네 풀꽃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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