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일 증평 좌구산 천문대에서 관측한 부분일식의 모습이 이채롭다.[제공=좌구산천문대]
지난 1월 1일 증평 좌구산 천문대에서 관측한 부분일식의 모습이 이채롭다.[제공=좌구산천문대]

[충북메이커스 문재현의 별자리이야기-10.]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 마을 시냇물은 아주 맑았다. 마을을 휘돌아가는 시냇물은 곳곳에 소와 여울을 만들어 놓았다.

그 소들이 마을 개구쟁이들의 여름 놀이터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소는 10살 먹은 아이가 완전히 잠길 정도로 깊은데다가 헤엄을 칠 수 있는 공간이 20여m 정도 됐기 때문에 여름이 되면 모든 마을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아침밥을 먹고, 조금 있다가 헤엄을 치고 배가 고프면 점심 먹으러 다녀와서 다시 저녁때까지 물놀이를 했다. 오후 4시가 넘으면 기온이 많이 내려가 해가 구름 속에 들어가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해진다.

심하면 입술이 새파래지고 몸이 떨리는데 그 때 배를 두드리며 이런 노래를 불렀다.

해야 해야 나오너라/ 김칫국에 밥 말아 먹고/ 장구 치고 나오너라.

나중에 일식과 관련된 세계 곳곳의 민속을 공부하면서 우리가 어렸을 때 했던 노래가 옛날에는 일식 때 해를 불러내는 굿 놀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 개기일식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해가 달에 의해서 거의 가려지는 일식은 본적이 있다. 달이 해를 가리자 컴컴해졌다.

달 뒤로 보이는 해의 빨간 불꽃과 코로나의 밝은 빛은 금방이라도 무슨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온도도 단숨에 떨어져 서늘해졌다.

감각에 혼란을 느낀 것은 나 뿐만 아니라 새들도 혼란스럽게 날았고 개들도 큰 소리로 짖었다.

해에 비해 지름이 40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달이 해를 가리는 신비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궁금했던 것 가운데 하나이다. 알고 보니 달이 해보다 지구에서 400배 가깝기 때문이었다.

요즘에야 개기일식은 관광 상품으로 개발돼 좋은 구경거리가 되지만 옛날 사람들에게는 우주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는 대재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때 사람들의 두려움을 전하는 은나라 시대의 갑골문자 기록을 찾아 볼 수 있다. “정묘일에 점을 쳤다. 무진일에 다시 밝아질까? 다시 밝아지지 않고 계속 어두울까?”

은나라 이후에도 고대 중국에선 일식과 월식이 발생한 날은 반드시 기록했다고 한다. 황하의 범람보다 더 큰 사회·정치적 재앙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식을 미리 예측하고 대응하는 특별한 의식이 마련됐다.

그 의식은 대개 깃발과 창과 칼, 북을 차려놓고 두드리는 것이었다. 북을 두드리는 것은 그 행동이 음기에 침해된 양기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일식에 관한 자료가 나온다. 일식에 관련된 구체적 의례는 기록돼 있지 않지만 신라의 일월제나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통해서 해에 관한 신화와 제사가 있었음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일식이 있을 때 왕이 어떤 의식을 행하였는지에 대한 내용과 절차는 국조오례의에 잘 기록돼 있다. 일식 때 왕이 행하는 의식을 구식례라 했다.

조선시대 국가적인 예제는 길례, 군례, 빈례, 흉례, 가례 5가지가 있다. 길례는 제사를 말하고 군례는 군대의 운용과 관련된 절차이며, 빈례는 외교 절차, 흉례는 국상이 났을 때 상장례와 관련된 제도이다. 가례는 혼인과 관련된 제도이다.

특이한 것은 구식례가 군례에 속한다는 것이다. 구식례를 하나의 전쟁으로 인식한 것인데 해가 군주를 상징하기 때문에 일식을 반역이나 국가의 대재난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왕은 이 전쟁을 지휘하는 사령관이 돼야 했다.

왜 조선시대에는 일식과 같은 천문학적인 현상을 왕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였을까? 제나라 관중과 관련된 기록인 ‘관자’ 사시에 그 내용이 잘 나온다.

“하늘의 양기를 관장하는 것이 해이고, 음기를 관장하는 것은 달인데 양의 기운은 덕이 되고 음의 기운은 형벌이 된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임금이 덕을 잃으면 일식이 일어나고, 형벌이 적절히 집행되지 못하면 월식이 일어나는 것으로 당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일식은 왕의 덕이 부족함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신하들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 이것을 ‘구언’이라 했다.

로마시대에도 일반 민중들은 일식과 월식 같은 현상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서기 14년 겨울, 로마에서 일어난 반란이 그들의 두려움을 잘 보여준다. 반란군이 달밤에 시가지로 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월식이 시작됐다.

혼란에 빠진 병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청동으로 된 무기를 두드리고 호각을 불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을 통해서 달이 빛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달이 완전히 사라지자 모두 주저앉아서 통곡을 했고, 반란은 진압돼 그들은 벌을 받아야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일식과 월식에 대처하는 방식이 동서양이 같았다는 것이다. 동양에서 황제나 왕을 중심으로 북을 쳤던 것처럼 서양에서도 모두가 함께 청동기를 두드림으로써 대재앙이 물러나기를 기대했다.

내가 어렸을 때 배를 두드리며 ‘해야 해야 나오너라’라고 노래를 불렀던 것도 이 원시시대 일식, 월식이 생겼을 때 재앙을 벗어나기 위해 노래했던 선조들의 믿음을 이어받지는 않았는지 생각된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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