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관련 낱말 가운데 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이 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이 날짜, 나중이다. 하루, 이틀, 사흘로 이어지는 날짜 세기 역시 날이란 말로부터 비롯됐다.[사진제공=증평 좌구산천문대]
해 관련 낱말 가운데 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이 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이 날짜, 나중이다. 하루, 이틀, 사흘로 이어지는 날짜 세기 역시 날이란 말로부터 비롯됐다.[사진제공=증평 좌구산천문대]

[충북메이커스=문재현의 별자리이야기-11.]우리말의 신세는 불쌍한 백성과 함께 서러움과 업신여김에 시달리며 짓밟히고 죽어 나갔다. 헤아릴 수 없이 죽어 나간 우리말을 어찌 여기서 모두 헤아릴 것인가! 셈말만을 보기로 들오보면 ‘은’은 ‘백(百)’에세 ‘즈믄’은 ‘천(千)’에게 ‘골’은 ‘만(萬)’에게 ‘잘’은 ‘억(億)’에게 짓밟혀 죽어 나갔다.

은에 미치지지 못하는 아흔아홉까지는 아직 살아서 숨이 붙어 있다지만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으로 올라갈수록 한자말인 이십, 삼십, 사십, 육십, 칠십, 팔십, 구십에 짓밟혀 목숨이 간당간당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말을 짓밟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아 차지한 한자말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고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의 열에 일곱이 한자말이란 소리까지 나올 지경이다.

한평생 우리말을 살리고 우리말로 학문하기를 실천해온 김수업 선생이 ‘우리말은 서럽다’란 책에서 한 말이다. 우리말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함께 느낄 수 있다.

나 역시 공감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하늘과 관련된 말도 이러한 처지에 놓여 있지 않은지 살펴보았다.

중국 글자인 한문을 끌어다 쓰면서 사라져버린 하늘 관련 말이 적지 않겠지만 해와 달, 별, 미리내, 살, 살별, 좀생이별, 별똥별, 별찌, 짚신할머니, 샛별, 개밥바라기, 닻별, 붙박이별 등이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해 관련 낱말의 뜻과 속살은 아직도 우리말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해와 관련된 낱말은 먼저 시간에 관련된 말을 찾아보는 것이 순서이다. 역법은 연, 월, 일을 정하는 규칙이고 이 가운데 연과 일이 해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해 관련 낱말 가운데 날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이 있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말이 날짜, 나중이다. 하루, 이틀, 사흘로 이어지는 날짜 세기 역시 날이란 말로부터 비롯됐다.

한날, 두날, 세날이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바뀐 낱말이기 때문이다. 닷새, 엿새란 말 역시 새가 해로부터 나온 것이고 이레, 여드레 역시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 변화 과정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굳어진 것이다.

오늘, 모레 역시 오늘은 ‘온 날’이란 뜻이고 모레는 ‘먼 날’이란 뜻이기 때문에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일과 명일은 한자말이 우리말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았다. 내일의 한자 ‘來’가 ‘올래’라서 오늘과 뜻이 겹쳐 한자말을 빌려서 뜻을 구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와 관련된 말 역시 살아 있다. 한 해, 두 해, 세 해로 세어가는 것이 일년, 이년, 삼년으로 세어가는 것보다 훨씬 더 정겹고 울림이 있어서인지 여전히 힘을 지니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해와 관련된 말로 또 다른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 돌이다. 어린아이 돌잔치를 할 때의 그 돌인데 지구가 해를 한 바퀴 돌아오면 새해가 되는 것에서 그 말이 생겼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방향에 관한 말에서도 우리 문명과 문화에 미친 해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동쪽은 우리말로 ‘새쪽’이었고, 서쪽은 ‘하늬쪽’, 남쪽은 ‘마쪽’, 북쪽은 ‘높쪽’이라고 했다.

동남쪽은 ‘새마쪽’, 남서쪽은 ‘마하늬쪽’, 북서쪽은 ‘높하늬쪽’, 북동쪽은 ‘높새쪽’이다. 이러한 방향 관련 낱말 가운데 해와 관련된 것은 새쪽과 하늬쪽일 것이다.

하늬의 뜻이 무엇인지 또렷하지 않지만 ‘해가 지는 쪽’이란 뜻이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서양도 그렇다. 라틴어로 동쪽을 나타내는 ‘오리엔트’는 ‘떠오르다’는 뜻이다.

서쪽은 옥시덴트이며 지다는 뜻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쪽은 탄생과 창조를 서쪽은 죽음과 시들어감을 뜻했을 것이다. 이 땅에 살았던 옛날 사람들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고 하루의 시작뿐 아니라 모든 것의 시작이란 뜻을 담았다.

새날, 새해, 새아침, 새옷, 새롭다 같은 말들은 지구가 자전하면서 해가 솟아오르는 생명의 행진에서 얻은 환희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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