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신을 상징하는 삼족오를 보면서 옛날 고구려 사람들은 까마귀를 불길한 새가 아니라 우주의 신성함과 조화를 상징하는 길조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해신을 상징하는 삼족오를 보면서 옛날 고구려 사람들은 까마귀를 불길한 새가 아니라 우주의 신성함과 조화를 상징하는 길조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충북메이커스 문재현의 별자리이야기-13.]텃밭에서 어머니와 일하는 중이었다. 까마귀 두 마리가 ‘까악까악’ 울었다. 까마귀는 빛깔이 검은데다가 울음소리도 을씨년스럽다.

어머니는 표정이 변하시면서 까마귀 보면 나쁜 일이 생긴다고 보지도 못하게 하시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재촉하셨다.

어린마음에 이해가 되지 않아 나중에 아버지에게 그 연유를 여쭤봤다. 아버지는 옛날부터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거나 사람이 죽는다고 믿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셨다.

까마귀는 사람 시체를 먹기 때문에 옛날 전쟁터에 까마귀들이 새까맣게 날아다녔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죽을 때면 까마귀가 날아든다고 믿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까마귀를 좋아 할리 없었다.

까마귀는 내가 알고 있는 새들 가운데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새였다. 나 역시 까마귀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 생각이 바뀐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세발 달린 까마귀, 곧 삼족오를 보면서였다.

해신을 상징하는 삼족오를 보면서 옛날 고구려 사람들은 까마귀를 불길한 새가 아니라 우주의 신성함과 조화를 상징하는 길조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몽 신화와 고구려의 동관이 까마귀에 대한 고구려 사람들의 의식을 잘 보여준다. 주몽 신화에는 해신인 해모수가 ‘오룡거’를 타고 ‘오우관’을 쓴 채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있다. 오우관은 까마귀 깃털로 만든 모자이다.

고구려왕이나 귀족이 썼던 것으로 보이는 평양 럭포구역 용산리 7호 고분에 출토된 금동절풍이 ‘삼족오’의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금동절풍 한가운데 해를 상징하는 동심원이 있고 그 안과 위쪽에 삼족오가 새겨져 있다. 아래에는 두 마리 용이 힘차게 꿈틀거리면서 삼족오를 떠받치고 있다. 해모수가 오룡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과정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와 같은 계통의 문화를 공유하던 동예에서도 까마귀를 해신으로 숭배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에서 동예의 해 신앙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해와 달의 정기를 지닌 연오랑이 일본으로 건너가 해와 달의 빛이 없어진 것으로 믿었던 신라의 왕이 사신을 보냈고 연오랑은 자신이 신의 계시로 일본에 건너온 것이고 명주비단으로 제사를 지낼 것을 주문했다.

실제 명주로 제사를 지내자 해와 달이 그전과 같아졌다고 한다. 이는 당시 일식과 월식이 있었음을 짐작케 해 주는 대목이다.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름에도 까마귀 오(烏) 자가 들어 있다. 사람들은 연오랑과 세오녀를 해와 달의 신 또는 해와 달의 신을 모시는 무당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우리 겨레가 신성한 새였던 까마귀를 재수 없고 불길한 존재로 보게 된 것은 조선시대였다. 전통적인 신화의 전승력이 약해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겠지만 검은색을 불길하게 보는 유교적 관념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시조에도 까마귀는 소인배에 비유되고 있다. 정몽주 어머니의 백로가에는 까마귀가 싸우는 골짜기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가 흰 빛을 샘낼까 염려스럽구나/ 맑은 물에 기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라고 적고 있다.

고구려 사람들은 왜 해를 다리가 세 개 달린 까마귀로 표현했던 것일까? 현실의 까마귀는 다리를 두 개 갖고 있으니 삼족오는 상상의 동물이고 사실보다는 문화적 상징성을 담고 있는 새라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도 해신과 까마귀, 그리고 세발 상징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해신은 아폴론이다. 아폴론을 주신으로 모시는 곳이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 신전이다.

델포이 신전 박물관에는 ‘신주헌작’이란 제목이 붙은 접시가 진열돼 있다. 지름이 25㎝쯤 되는 접시에 아폴론이 걸상에 앉은 채 술을 뿌리는데 횃대에는 까마귀가 앉아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양 그림을 보면 그리스 신들은 새들과 함께 나타날 때가 많다. 제우스는 독수리, 헤라는 공작, 아테네는 부엉이, 아프로디테는 백조나 비둘기와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아폴론은 까마귀와 함께 다닌다.

옛날에 까마귀는 날개 빛깔이 지금처럼 검은색이 아니라 황금색이었다고 한다. 아폴론이 코로니스라는 예쁜 여자랑 결혼을 했지만 매일 해마차를 운행하느라 바쁜데다가 신들의 회의도 있고 해서 까마귀한테 코로니스랑 함께 있으며 소식을 전해달라고 했다.

하루는 까마귀가 코로니스한테 갔더니 어떤 남자랑 이야기하고 있었고 사정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아폴론에게 일러바쳤다.

화가 난 아폴론은 코로니스한테 활을 쐈고 명궁인 아폴론의 화살은 정확히 코로니스 가슴에 꽂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코로니스의 친 오빠였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코로니스는 자신은 죽어도 괜찮으니 배 속의 아이는 꼭 살려달라고 애원했고 그 때 태어난 아이가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였다.

화가 난 아폴론은 까마귀의 황금색 날개를 검게 만들고 사람의 말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옛날처럼 사람의 말을 하려면 흉측한 “까악까악” 소리만 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까마귀는 해신 아폴론을 상징한다. 아폴론 신앙에도 세발 상징에 관한 것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운명을 점치기 위해 신전에 가서 신의 뜻을 물었는데 이를 신탁이라고 한다.

아폴론은 해신일 뿐만 아니라 점술의 신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를 모시는 델포이 신전은 신탁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다. 그 델포이에서 신탁을 전하는 여사제의 이름이 ‘퓌티아’였는데 그는 신탁을 전할 때 세발 달린 특별한 의자인 ‘트리포도스’에 앉아 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와 남성의 원리가 세 개의 발로 표현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 즐거움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유쾌한 경험이었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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