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나무는 누에를 키워 비단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 문명과 때를 같이 하는 나무입니다.
뽕나무는 누에를 키워 비단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 문명과 때를 같이 하는 나무입니다.

[충북메이커스 이광희의 나무인문학-13.]요즘 뽕나무 열매 오디가 한창입니다. 초록에서 붉은색을 거쳐 검은색으로 변하는 오디는 신비스럽기도 합니다.

배고프던 60~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오디한번 안 먹고 자란 경험은 없을 겁니다. 오디는 뽕나무 열매이며 산에서 자라는 산뽕나무와 재배하는 뽕나무로 나눌 수 있습니다.

뽕나무는 누에를 키워 비단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 문명과 때를 같이 하는 나무입니다.

강판권 박사의 책 ‘나무사전’에 의하면 중국의 영문인 CHINA(차이나)의 어원인 CINA(치나)가 ‘비단’이란 뜻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비단은 서역의 주요 교역물품으로 중국에서 수입했으며 중국을 곧 비단의 나라라고 불렀을 정도입니다.

중국에서 생산되던 비단은 페르시아를 비롯한 로마 등 서역을 오가는 최고의 교역품목으로 화폐를 대신하기도 했으며 구하기 힘든 귀한 옷감으로 부유와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비단이 오가는 ‘실크로드’가 생겼겠습니까. 중국의 시안에서 시작해 타클라마칸 사막을 거쳐 로마의 콘스탄티노플까지 가는 길이 실크로드입니다.

비단을 교역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지나다니던 길이었던 거지요. 몇 년 전 중국 시안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까지의 실크로드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지금의 시안)을 출발해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보관돼 있다는 모래산, 명사산의 끝 막고굴, 손오공의 삼장법사 현장이 만났던 화염산을 지나 타클라마칸 사막은 끝없이 펼쳐져 나무 한그루 자라지 못하는 황량한 벌판이었습니다.

이어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천산산맥도 보았습니다. 실크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중국인이라기보다 이미 언어도 얼굴색도 다른 민족들이었고, 한편으로는 누들로드(국수의 길)라고 해야 할까요?

국수종류가 점점 다양하게 변화하는 길이었으며, 불교문화가 전파된 길이었고, 그 황량하던 길가 일부 마을들의 뽕나무 가로수를 통해 잠업의 흔적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

신비스런 경험이었는데 당시 여행하는 동안 황량한 황토사막 가운데 자라는 대추나무, 포도나무와 뽕나무, 포플러 종류의 나무들, 여전히 수천년 역사를 간직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길을 수천년 전에도 누에의 실로 만들어낸 비단천을 팔기 위해 수많은 상인들이 지나다녔던 것입니다.

뽕나무 잎을 먹여 누에를 키우고, 누에는 고치를 만들어 비단을 생산하고, 생산된 비단은 고대시대부터 중국을 상징하며 단순한 몸을 보호하는 옷의 기능을 넘어 아름다움과 고상함을 세련되고 우아하게 표현하는 치장품이기도 했던 겁니다.

당연히 뽕나무 재배는 국가 차원의 중요 사업이었습니다. 진시황제가 서복을 파견해 한치짜리 오디를 구해오게 했다는 기록이며, 주나라 선혜시기 위나라의 공실이 문란해 처첩을 서로 훔쳐 뽕밭에서 밀회했다는 등 퇴폐적 풍속을 지칭하는 상중지희(桑中之喜)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굳이 우리나라 한때 유행했던 영화 ‘뽕’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뽕나무는 사랑과 밀회를 표현했던 나무였지요.

우리나라 역시 뽕나무를 중시했던 중국처럼 삼국사기와 신라본기의 표현에 의하면 ‘박혁거세가 누에치는 것을 권장했다’는 기록도 나오고 고려시기와 조선을 거치면서도 뽕나무와 누에치기는 가리지 않고 등장하는 주요한 이야기였습니다.

오죽하면 누에를 키우고 종자를 나눠주는 서울시 송파구에 잠실을 설치했던 지명이 ‘잠실’이었겠습니까.

세종대왕 당시 잠실담당 관리가 올린 공문에서 ‘뽕나무는 경복궁에 3590그루, 창덕궁에 1000여 그루, 밤섬에 8280그루로 누에 종자 2근 10냥을 먹을 수 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뽕나무 하나하나가 재산이었으며 조선 말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도 뽕나무를 키워야 굶어죽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뽕나무는 정말 버릴게 없는 매우 실용적이며 재산가치 있는 나무입니다. 지금도 뽕나무순은 나물로, 한여름 잎은 뽕잎차와 분말로, 잎은 다시 누에를 키워 실을 켜서 비단을 생산하고, 뿌리는 약용으로, 열매인 오디는 식용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뽕나무농사와 잠사산업이 내리막길입니다만 2017년 현재 여전히 누에사육농가 735호에 누에사육용 뽕밭면적이 480㏊에 달합니다.

누에사육 주산지는 경북으로 332호가 남아있습니다. 이것은 전국 사육농가의 45%에 달하며 누에 산물 생산액은 매년 79억원 가량입니다.

오디 생산 농가는 4182호 가량이고 재배면적은 1309㏊, 생산량은 5637t(톤)이며, 매년 타작물 전환으로 감소중입니다.

오디의 또 하나 주산지는 전북으로 전국재배농가의 60%입니다. 이어 전남, 충남 순으로 오디 생산액은 469억원 규모입니다.

양잠농가는 누에와 오디 포함 61세 이상이 59%, 51~60세가 30%로 고령화가 지속되고 있고 신규 진입자가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양잠산물’이라 하니 어떤 것인지 궁금하시죠? 형태별로는 누에고치, 건조누에, 생누에, 동충하초와 기타 양잠산물로 수번데기(나방), 잠분, 뽕잎, 오디 등의 상품들입니다.

사실 정부차원에서도 양잠산업을 웰빙, 친환경, 기능성 등 미래 농업자원으로 활용해 시장진출을 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양잠농가의 시설 및 생산규모가 영세한 수준이라 6차 산업화(생산, 가공, 체험)나 전문유통조직구축으로 나아가기에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제는 비단 말고도 다양한 직물들이 생산되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소비량이 줄어들지 않은 것은 번데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청주역 근처에 잠사박물관이 있었습니다. 뽕나무도 재배하고 오디 따먹기도 하고 양잠체험도 하는 곳이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선배님이 얼마간 잠사박물관을 운영했습니다만 지금은 폐점되었습니다. 이 곳 역시 양잠산업의 감소추세와 운명을 함께 한 것 아닐까요.

뽕나무는 동아시아 문화의 중요 농산물이자 자원이었습니다. 뽕나무를 많이 재배해서인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각종 설화와 문학의 자양분이었습니다.

뽕나무의 이름이 만들어진 이유일 지도 모를 ‘방귀 이야기’를 생각하며 오디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신기하게도 오디를 먹으면 방귀가 많이 나왔는데 오디 때문인지 기분 탓인지 여전히 궁금합니다.

‘본초강목’에도 오디는 소화에 좋다고 기록된 것으로 봐서 매우 그럴듯한 이름이 아니었겠는가 생각되네요.


이광희 충북도의원
이광희 전 충북도의원

▷이광희 숲 해설가·전 충북도의원은 성남고와 충북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충북대 대학원에서 산림학과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한국청년연합회(KYC) 공동대표와 민화협 청년위원장, 산남두꺼비마을신문 편집장, 충북숲해설가협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이근식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대변인, 제9대, 10대 재선 충북도의원을 지내고 지난해 6.13지방선거 민주당 청주시장예비후보로 활약했다. 최근 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저서로 '나는 지방의원이다', '이광희가 들려주는 우리 동네 풀꽃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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