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소나무.
조선 소나무.

[충북메이커스 이광희의 나무인문학-14.]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말할 것도 없이 소나무입니다. 우리네 사람들의 고난과 역사의 순간을 함께 이겨낸 늘 푸른 나무도 소나무입니다. 오늘은 소나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나무의 제왕입니다. 전체 산림면적의 30% 가까이가 소나무입니다. 물론 갈수록 소나무림면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건재합니다.

줄기가 붉어 적송, 육송, 여송(女松), 춘양에서 생산된다고 ‘춘양목’, 금강석처럼 단단하다고 해서 ‘금강송(金剛松)’이라 불립니다. 한반도에는 공룡이 살던 중생대 백악기시대 소철, 고사리, 은행나무와 함께 소나무가 나타났습니다.

그 후 약 7000년에서 1만년 전 참나무류가 성한 뒤 참나무속·서나무속·느릅나무속·호도나무속 등과 함께 살아오다가 사람들에 의한 간섭으로 약 1400년 전부터 소나무가 갑자기 불어났습니다.

물론 국내에만 소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100여종의 소나무 중에서 65종이 북미 대륙에, 유라시아 대륙에는 40여종, 위도상 북위 36도 부근에 40여종이 살아갑니다. 유럽여행 할 때 끝없이 펼쳐진 붉은 줄기의 소나무 숲을 본적도 있습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소나무를 정말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진시황이 태산에 올랐다가 소나기를 만나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인근 소나무 밑에서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피했습니다.

진시황제가 이 소나무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오대부(五大夫)라는 오품의 벼슬을 내렸답니다. 어쩐지 이성계와 속리산 정이품송 소나무 이야기와 흡사하지 않습니까?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진시황제는 소나무에 금과 옥을 입혀 동서로 700m, 남북으로 120m에 이르는 2층 건물로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방궁을 지었습니다.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면서 아방궁을 불태웠는데 무려 3개월 동안 타올랐다고 하죠.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진시황제는 병마용의 건설에도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이용했고, 수도 함양의 가로수를 소나무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네 소나무 가로수의 원조는 진시황제입니다.

나무박사 강판권은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 라고 책도 낼 정도입니다. 임진왜란 거북선과 판옥선 대부분이 소나무였습니다. 튼튼하고 견고한 2층과 3층으로 된 판옥선은 뱃머리를 부딪쳐 상대 전함을 박살낼 수 있어야 했지요.

반면 일본의 전투선은 빠르고 날랜 움직임이 강점이었고 이는 가볍고 가공에 용이한 삼나무를 활용해서 내구성과 견고함이 크게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순신장군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소나무의 덕이 크다고 볼 수 있었던 거죠. 조선을 지키는데 일조한 소나무는 조선건국 때 경복궁과 궁궐 대부분의 목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기근이 들었을 때에는 껍질과 솔잎으로 구황식품의 역할을 했으며 다식으로, 땔감으로, 건축 목재로도 쓰였고 심지어 망자의 관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네 삶과 함께하던 나무가 소나무였으며 왕실에서 소나무를 보호하기도 했던 말 그대로 조선 오백년은 소나무의 나라라고 할 수 있었죠.

소나무가 이런 영광의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항상 내외의 침략에 맞서야 했던 우리의 운명처럼 송충이 같은 해충의 도전은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국가 시책으로 송충이를 잡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태종5년 승추부와 순위부 등 1만여명을 동원해서 송악산 골짜기의 송충이를 잡기로 해 한사람이 석 되[升] 정도 잡아 땅에 묻었는데 이때 송충이가 산에 가득하니, 임금이 근심하였다고 합니다.

숙종28년에는 3일간 잡은 송충이가 약 3972석이었으며, 숙종 11년에 유행한 송충이는 아무래도 보통 재난이 아닌 듯 인력으로 제거하기 어려울 듯 하다는 영의정의 충언에 따라 송충이의 피해를 막기 위해 기우제처럼 왕이 주제하는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의 소나무가 송충이의 피해를 보자 송충이를 입에 넣어 삼켜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송충이로 인한 피해는 일제 강점기도 여전해서 소설가 김동인의 소설 ‘감자’에 “복녀는 열심으로 송충이를 잡았다. 소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는 송충이를 집게로 집어서 약물에 잡아넣고 또 그렇게 하고 그의 통은 잠깐 사이에 차곤 하였다. 하루에 삼십이전씩의 품삯이 그의 손에 들어왔다”는 것으로 미뤄 삼십이전씩의 품삯을 들여서라도 송충이를 잡게 했던 겁니다.

물론 제가 어렸을 적에도 학교에서도 깡통을 들고 송충이를 잡아오라고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40년여 전 이야기입니다.

송충이뿐만이 아닙니다. 재작년 제주도 올레 길을 걷다가 소나무재선충으로 전쟁터의 포격을 받아 파헤쳐진 것 같았던 소나무 수림지역을 발견하고서 경악을 금치 못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제주도의 소나무 재선충병은 2012년 6월부터 지금까지 속수무책으로 확산되고 퍼졌습니다. 그동안 잘려나간 고사목만도 213만5000그루, 제주도는 2013년 10월부터 재선충병 해결을 위해 약 5년간 2000억 원을 투입했습니다.

또 최근 세계유산본부는 2022년까지 403억원을 들여 나무주사 19만3000그루, 고사목제거 6700그루, 항공방제 2760ha의 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제주시 5개, 서귀포시 3개 등으로 나눠 작업을 이어가는데 투입하는 인력만 2600여 명에 이릅니다.

소나무 피해의 직접 원인인 재선충병 외에 학계 및 전문가들은 ‘기후의 변화로 인해 소나무생육환경이 나빠진 것’이 문제라고 짚고 있습니다. 산림청장들은 매년 소나무재선충으로 사라져가는 제주도를 시찰하고 있는 중이구요.

소나무재선충은 1mm 내외의 선충으로 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의 몸 안에 서식하다가 새순을 갉아 먹을 때 상처부위를 통해 나무에 침입합니다. 침입한 재선충은 빠르게 증식해 수분, 양분의 이동통로를 막아 나무를 죽게 만들며 치료약이 없어 감염되면 100% 고사하기 때문에 철저한 예방이 이뤄져야 하는 무서운 소나무 질병입니다.

소나무는 내우외환에 시달려 왔습니다. 나무의 왕좌를 차지하는 것만큼 자리를 보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최근 재미있게 본 미국 드라마가 생각이 납니다. 드라마에서 죽은자들을 살려내 인간을 위협하는 백귀들은 인간연합군에 의해 패배합니다. 그리고 다시 인간끼리의 혈투, 과연 왕좌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트럼프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지도자들이 즐겨 시청했다는 드라마는 그 스케일만큼이나 패러디와 풍자와 인용이 많았습니다.

이번 나무의 인문학 역시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며 마무리짓고자 합니다. 소나무는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 나무세계에서는 왕중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끝없는 욕망들이 소나무를 통해 발현되기도 하고 오가기도 했습니다. 자연 속에서도 인간의 욕망을 통해서도. 여전히 소나무는 가장 넓고 많은 정신적으로도 한국인이 손꼽는 나무의 왕(수리)입니다.

그렇기에 그 자리는 늘 위협받고 어려움에 직면하기 일쑤였지요. 그 어느 위치가 그렇지 않은 게 있겠습니까만 독야청청 오늘도 푸르른 소나무에 대한 아련한 연민과 자랑스러움이 스며든 소나무 이야기였습니다.


이광희 충북도의원
이광희 전 충북도의원

▷이광희 숲 해설가·전 충북도의원은 성남고와 충북대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충북대 대학원에서 산림학과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한국청년연합회(KYC) 공동대표와 민화협 청년위원장, 산남두꺼비마을신문 편집장, 충북숲해설가협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이근식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 대변인, 제9대, 10대 재선 충북도의원을 지내고 지난해 6.13지방선거 민주당 청주시장예비후보로 활약했다. 최근 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저서로 '나는 지방의원이다', '이광희가 들려주는 우리 동네 풀꽃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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