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은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알려진 그림이다. 밤하늘은 별빛으로 요동치고 땅에선 사이프러스나무가 마치 불꽃처럼 하늘 높이 향한다. 그러나 첨탑 높은 교회와 마을은 그것도 모르고 고요하기만 하다.[그림출처=위키미디어]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은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알려진 그림이다. 밤하늘은 별빛으로 요동치고 땅에선 사이프러스나무가 마치 불꽃처럼 하늘 높이 향한다. 그러나 첨탑 높은 교회와 마을은 그것도 모르고 고요하기만 하다.[그림출처=위키미디어]

[충북메이커스 이광희의 나무 인문학-15.]오늘 나무의 인문학은 ‘빈센트 반 고흐’의 나무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빈센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입니다. 900여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생전에는 단 한 점만 팔렸다고 하죠? 몇 차례 사랑의 실패, 성병, 귀 자른 자화상, 정신병원, 그리고 자살로 이어지는 그의 생애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이 시대 가장 사랑받고 있습니다. 빈센트가 그린 그림 중에서 나무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강렬한 노란색 불 밝히던 해바라기도 있습니다만, 나무의 인문학인 만큼 오늘은 빈센트가 그렸던 나무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전 생애 그린 그림의 설명을 모두 하기는 어려워서 1888년 생레미 병원부터 1990년 사망하기 전까지 그렸던 나무그림을 중심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이 시기가 반 고흐 최고의 절정기였습니다. 그 이전 여러 가지 색채를 표현하기 위한 몸부림속의 화풍이었다면 이때는 반 고흐만의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화풍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은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알려진 그림입니다. 밤하늘은 별빛으로 요동치고 땅에서는 사이프러스나무가 마치 불꽃처럼 하늘 높이 향합니다. 그러나 첨탑 높은 교회와 마을은 그것도 모르고 고요하기만 하지요.

빈센트는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창밖을 보며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풍경을 묘사했지요. 빈센트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대로 그리는 편이었으나 이 그림만큼은 상상속의 사이프러스와 별, 그리고 산과 마을을 그렸습니다.

두 번의 정신병원을 전전했으나 생레미 병원에서는 다시 일어설 것이란 의지가 강했습니다. 정원의 나무와 꽃을 그린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고흐는 사이프러스나무에 필이 꽂혀 있었습니다. 죽기 1년여 전쯤인 1889년 오로지 단 한사람 고흐를 이해해주고 후원해주던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는 사이프러스의 매력에 푹 빠졌다. 나의 해바라기 그림처럼 지금까지 시도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창조해낼 것 같기도 하구나. 사이프러스는 마치 이집트 뾰족탑처럼 균형 잡힌 아름다운 나무다."

그 즈음 고흐는 사이프러스가 등장하는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립니다. 고흐의 그림을 상징하는 '별이 빛나는 밤'부터 '밀밭과 사이프러스',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 두 여인과 사이프러스' 등 그의 작품에 사이프러스는 새로운 그림 속 모티브로 나타납니다. 사이프러스나무는 사실 우리나라에는 없는 나무입니다.

굳이 비슷한 종류라면 측백나무와 향나무를 섞은 정도거나 노간주나무를 닮기도 했고요. 정확하게는 ‘이탈리아 사이프러스(Itailan Cypress)’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이 당시의 사이프러스 그림들은 하늘로 약동하는 생동감과 힘찬 생명력, 그리고 전체적으로 안정되면서도 화사하지만 억제된 색조가 눈에 띱니다. 그래서인지 고흐 자신도 이 작품을 "내가 그린 가장 명성 있는 작품" 이라고 평가합니다.

고흐가 생레미병원에서 소나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생레미병원 정원에는 소나무들이 많았나 보다. 특유의 분방함과 자기만의 색채로 소나무를 그렸다.
고흐가 생레미병원에서 소나무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생레미병원 정원에는 소나무들이 많았나 보다. 특유의 분방함과 자기만의 색채로 소나무를 그렸다.[그림출처=위키미디어]

고흐가 생레미병원에서 소나무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생레미병원 정원에는 소나무들이 많았나 봐요. 특유의 분방함과 자기만의 색채로 소나무를 그립니다. 그림속의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적송과도 많이 닮았습니다. 굽은 줄기와 조금은 앙상해 보이는 모습조차 닮았으니 말입니다.

우리 동네 아파트 정원의 가지치기된 소나무의 모습이 그림속의 소나무와 비슷해 보입니다. 소나무 그림을 보면서 고흐는 자신만의 푸르른 청춘과 젊음이 앙상하고 굽은 줄기로 남아있긴 하지만 결국 늘 푸른 솔잎처럼 한결같길 바랐던 것 아닐까요? 그래서 그림 속 오래된 노송아래 중년신사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원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고흐는 생레미병원에서 소나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생레미병원 정원에는 소나무들이 많았나 보다. 특유의 분방함과 자기만의 색채로 소나무를 그렸다.[그림출처=위키미디어]
고흐는 생레미병원에서 소나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생레미병원 정원에는 소나무들이 많았나 보다. 특유의 분방함과 자기만의 색채로 소나무를 그렸다.[그림출처=위키미디어]

고흐는 18점의 올리브나무 그림을 그립니다. 그중 생레미 병원에 머물던 시절에 14점의 올리브나무그림을 그렸습니다. 반 고흐는 그림속의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올리브 나무를 통해 예수의 수난 또는 자신의 처지를 상징했다고 합니다. 올리브를 수확하는 여인들의 그림 속 여성들이 신성한 의식을 치르고 있는 듯한 모습에서도 유사한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올리브나무들은 아주 독특해서 그 색을 포착하기 위해 고전하고 있다. 그것은 어떨 때는 푸른빛이 도는 은색이고, 어떨 때는 초록빛과 청동색을 띤 은색이어서 노란색, 분홍색, 보라색 또는 오렌지색에서부터 희미하게 붉은 황토색으로까지 보이는 대지 위로 흰빛을 발 한다”

알피유산맥을 배경으로 그린 올리브나무, 올리브 농사짓는 모습, 사시사철 볼 때마다 달라지는 올리브 나무를 애정 듬뿍 담긴 시선으로 화폭에 옮깁니다. 계절에 따른 올리브나무잎 색깔도, 배경이 되는 색감도 모두 반 고흐 특유의 다양한 표현을 과감하게 시도합니다.

반 고흐가 그린 과수원의 나무들은 생명의 찬란함과 결실, 풍요로움을 밝은 빛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수나무들은 유난히 다른 그림들의 강렬한 느낌보다 따뜻하고 경쾌하며 밝은 색채로 채워져 있다.[그림출처=위키미디어]
반 고흐가 그린 과수원의 나무들은 생명의 찬란함과 결실, 풍요로움을 밝은 빛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수나무들은 유난히 다른 그림들의 강렬한 느낌보다 따뜻하고 경쾌하며 밝은 색채로 채워져 있다.[그림출처=위키미디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의 풍경 속에 투영하면서 화폭 속에서 표현코자 했던 고흐는 자연과 사람이 함께하는 모습도 많이 그렸습니다. 또 올리브 과수원뿐만 아니라 복숭아와 포도밭 등의 과수원과 유실수도 많이 그립니다.

특히 과수원 그림은 경쾌하고 밝습니다. 복숭아나무의 꽃핀모습도 눈에 덮인 복숭아나무도 같은 나무입니다. 뽕나무는 해바라기를 그렸을 당시의 노란색불꽃을 연상케 합니다. 마치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 같은 느낌도 살짝 드는군요.

과수원의 나무들을 그릴 때 생명의 찬란함과 결실, 풍요로움을 밝은 빛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습니다. 과수나무들은 유난히 다른 그림들의 강렬한 느낌보다는 따뜻하고 경쾌하며 밝은 색채로 채워져 있습니다.

심지어 겨울을 이겨내는 나무들조차 밝고 화사합니다. 당연히 특유의 강열한 색감은 세상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일정도로 밝게 표현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900점의 그림을 그린 서양미술사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사람입니다.

네덜란드 남부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개신교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엄숙하고 종교적인 집안에서 성장합니다. 마침 미술품 딜러였던 삼촌의 소개로 화랑에서 일하면서 예술적 감각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한때는 목회자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하며 광산에 들어가 선교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그림을 배우기 위해 미술학교에 입학, 석 달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폴 고갱을 만나 심하게 다투고 나서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른 후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고, 마을에서 쫒겨나 경찰이 그의 집을 폐쇄하기도 했습니다.

발작이 심해지면서 입원한 정신병원에서 마지막 1년을 보냅니다. 이때 150여점의 유화를 남겼습니다. 37세의 나이로 사망 할 때까지 고독과 외로움 속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야 했던 비운의 천재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그림이야기로 돌아가서 반 고흐의 나무 그림 중 유난히 관심 있는 그림은 나무 둥치그림입니다. 고흐는 나무의 밝은면 만을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나무그늘 밑 아이비와 음지에서도 살아남는 나무둥지의 생명체들에게도 관심을 쏟았습니다.

나무줄기 사이로 보이는 또 다른 나무들과 사람들, 나무줄기들을 그리면서 화려하게 살아가는 세상보다는 줄기 밑 그늘 속 음지식물들을 자신의 처지와 등치시켰던 것은 아닐까요. 버즘나무 가로수는 쓸어 모은 눈더미 속에도 벌거벗은 모습이지만 당당합니다.

포플러나무 사이로 보이는 올리브농장 나무들의 아름답고 화사한 모습과는 달리 이태리 포플러의 줄기는 뒤틀리고 검게 표현된 데다 곁가지마저 가시처럼 삐죽삐죽 마음대로 자란 모습입니다.

생애 마지막 3년간 그린 고흐의 나무들 중 빼놓을 수 없는 나무그림들도 소개합니다. 체스트넛은 밤나무를 뜻합니다. 그런데 유럽쪽에선 칠엽수 역시 밤나무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고흐의 나무속 밤나무는 제가 아는 마로니에, 즉 칠엽수의 나뭇잎과 꽃을 그린 것으로 보이거든요.

이 밖에도 참나무들도 몇 점 그렸습니다만 그 중 제 마음에 드는 나무 그림은 역시 ‘바위와 떡갈나무’입니다. 제 입장에선 이 나무 역시 떡갈나무보다는 자작나무 수형을 더 많이 닮았지만 그렇게들 표현하고 있어서(심지어 고흐조차도)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심지어 겨울을 이겨내는 나무들조차 반 고흐의 그림에선 밝고 화사하다. 당연히 특유의 강렬한 색감은 세상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일정도로 밝게 표현된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900점의 그림을 그린 서양미술사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사람이다.
심지어 겨울을 이겨내는 나무들조차 반 고흐의 그림에선 밝고 화사하다. 당연히 특유의 강렬한 색감은 세상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일정도로 밝게 표현된다.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900점의 그림을 그린 서양미술사의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사람이다.[그림출처=위키미디어]

다른 나무들은 자라지 못하는 바위언덕에 홀로 고독하게 바람에 휘둘려 기울어진 모습, 그러나 너무도 당당하게 서있는 저 나무를 그리면서 “나 빈센트 반 고흐야!”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상상 합니다.

이번 반 고흐의 그림 이야기에 소개되었던 그림은 그의 생애 마지막 3년 즈음 그렸던 나무들을 중심으로 소개됐습니다. 그 이전 음울하고 강열하게 그렸던 나무그림들 보다 이 당시의 나무 그림들이 저는 좋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오늘 소개하고자 했던 고독하게 살다간 고흐의 그림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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