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음성혁신도시가 중부권의 지식기반시대를 선도하는 전초기지로 발전 해 가고 있다.
충북 진천·음성혁신도시가 중부권의 지식기반시대를 선도하는 전초기지로 발전 해 가고 있다.

 

[충북메이커스-신경직의 지명이야기-4.]충북혁신도시는 국가 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법무연수원 등 11개 공공기관과 IT(정보기술) · BT (생명기술)· 태양광 중심의 산・학・연 중심의 클러스터를 조성하여 중부권 최대의 거점도시로서 성장해 가고 있다.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는 2020년까지 1만3000세대의 공동주택지와 상업시설 등 정주여건을 마련해 4만여명이 거주하게 될 명품자족도시로 개발해 가고 있다.

이 충북혁신도시는 우리고장의 진천군과 음성군에 걸쳐 약 660만㎡규모로 시행되고 있으며, 남측의 절반은 살기 좋다는 뜻의 생거진천(生居鎭川)의 고장 진천군이 자리하고 있다.

진천군은 철의 고장으로 예로부터 ‘검은 땅’ 이라 하여 신라 경덕왕 때부터 흑양군(黑壤郡)으로 불려왔다. 진천군 지명 가운데 쇠(金)와 관련된 지명이 유독 많은 점과 우리나라 최고의 진천 석장리 고대 철 생산유적 등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같이 철의 고장이었던 곳이 고려 태조 23년(940년) 지명 변경 때 항주(降州) 또는 진주(鎭州)으로 바뀌었다. 무슨 연유로 태조 왕건은 지명을 바꾼 것일까?

이야기는 후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태조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자, 당시 궁예 세력이 주를 이루고 있던 청주(당시 서원경)는 왕건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다.(918년) 당시 청주는 궁예가 철원으로 수도를 옮겨가자 청주인 1000호를 이주시켜 통치기반으로 삼았을 정도로 궁예지지 세력이 강한 지역이었다. 이에 왕건이 궁예를 축출하자 궁예를 따르던 청주의 호족들은 반란을 일으킨다.

왕건은 청주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마군장군(馬軍將軍) 홍유(洪儒), 유금필(庾黔弼)을 급파, 청주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명했다. 이 과정에서 청주와 인접한 진천의 호족세력들은 왕건의 편에 서서 청주의 진압을 적극 도왔다는 후문이다.

결국 왕건의 군사들은 당시 진천 호족들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반란군을 진압했다. 이때부터 당시 흑양군으로 불리던 진천을 반란군을 항복시킨 곳이라 하여 항주(降州) 또는 진압한 곳이라 하여 진주(鎭州)라 부르게 된다.

고려를 세우는데 전초기지를 맡았던 진천군이 이제 중부권 시대의 성장거점 지역으로서 허브역할을 하면서 21세기 지식기반시대를 선도하는 전초기지로서 새로운 역사적 조명을 받고 있다.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사진)은 청주 문의에서 태어나 충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를 이수했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 입사,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문화와 지명에 관심을 갖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명속의 역사산책(디자인 신화)’이란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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