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현 소장은 마을공동체육아지원에 어려운 현실 속에서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해답을 전통육아법에서 찾았다. '도리도리 짝짜꿍' 스케치[해오름출판기획]
문재현 소장은 마을공동체육아지원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육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해답을 전통육아법에서 찾았다. 아빠가 찾고 불러준 아기 어르는 소리 '도리도리 짝짜꿍' 스케치 [해오름출판기획]

 

[충북메이커스-문재현의 육아슬기-3.]아내가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 흥분과 기대, 설렘이 가득했지만 아내와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하나 이야기하면서 점점 두려움과 불안이 교차했다.

우리가 태교와 출산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내와 나의 경험이 너무도 달랐다. 아내는 도시에서 만 살아서 마을이 아이를 함께 기르는 문화를 경험하지 못했다.

내가 어릴 때는 마을이 아이를 함께 길렀다. 아이 주변에 항상 친척이나 이웃이 있었고 어른들 뿐만 아니라 많은 언니, 형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런 관심과 기대 속에서 아이의 몸과 마음은 건강하게 자랐다.

그 시절 아이는 단지 가족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마을의 구성원으로 태어났기에 아이를 기르는 것은 마을 전체의 일이 됐다.

육아에 대한 지식도 밖에서 얻을 필요가 없었다. 마을의 할머니들은 적어도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기르고 수십 명의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본 육아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다. 동네 할머니들은 육아경험이 부족한 엄마들의 든든한 상담자이기도 했다.

손주들의 똥 가리기와 옷 입기, 밥 먹기 등 생활습관을 잡아주는 역할도 기꺼이 맡았고, 틈틈이 노래와 놀이,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둘러앉은 할머니들의 무릎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육아 동아리는 갓난아기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튼튼한 울타리가 됐다.

형과 언니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놀았고 그렇게 어릴 때부터 동생을 업어주고 데리고 놀게 되면서 육아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육아에 참여한 언니와 형이 자라서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이기에 육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이가 마을공동체 육아에서 받는 것은 입고, 먹는 것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공감과 사회적 정체성을 포함한 모든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어느덧 도시 생활에 익숙해졌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마을공동체 육아지원은 꿈도 꿀 수 없었기에 온전한 부부의 몫으로 다가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던 듯싶다.

아내가 또래 엄마들과 마을에서 만들 수 있는 육아 지원망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옛날에는 젊은 엄마들이 함께 밭일을 하거나 우물에서 빨래를 하면서 정보도 나누고 심리적인 지원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 마을은 20~30대 젊은 엄마가 세 명밖에 없었고 각자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유대관계를 맺기도 어려웠다.

마을이 가진 거대한 문화의 바탕이 무너진 상태에서 우리 둘의 노력만으로 따뜻한 육아동아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얘기를 했다. 나보다는 아내가 힘들 것이기에 아내가 느끼는 불안함과 어려움에 대해서 먼저 들어봤다.

아내는 몸이 힘든 상태에서 집안일에 대한 육체적 피로감, 지원망이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잉태하고 다음에 어떻게 길러야 할지 등 양육 및 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부담을 이야기했다.

아내의 무거운 짐을 줄여주기 위해 가사 노동을 내가 조금 더 하는 쪽으로 했고,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위로와 공감의 시간을 충분히 갖기 위해 노력했다.

태중의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고민해 봤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우리문화를 바탕으로 한 육아 이론과 놀이에 대한 안내서는 찾을 수 없었다. 서양의 육아 이론을 바탕으로 한 육아법과 놀이를 소개한 책은 있었지만 내 육아철학과 너무도 달라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임신 5개월쯤 돼 아내가 뱃속에서 아기가 논다는 얘기를 듣고 구체적인 육아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 답은 전통 육아법에서 찾았다.

나보다 여덟 살 아래인 막내 동생이 어렸을 때 ‘도리도리 짝짜꿍’을 하면 온 가족이 모여서 손뼉 쳤던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그 놀이판을 만든 것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 놀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찾아다녔다. 우리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미원, 음성, 충주까지도 찾아갔고 방송에 소개됐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 소개됐던 노래도 들어봤다.

배울 때는 노랫말과 장단뿐만 아니라 표정, 호흡, 분위기 연출능력을 그대로 흉내 냈다. 일허게 배운 내용을 두 아이랑 함께 했고, 우리 집 뿐만 아니라 내가 소장으로 있는 연구소 연구원의 아이들하고도 함께 했다.

정말 다행이지만 아이들은 건강하고 창조적인 모습으로 자라났다. 노래와 놀이, 수수께끼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 창조적인 즉흥성을 보여줬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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