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엄마한테 눈을 맞추는 것은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는 몸짓이고 눈빛이며 삶의 요구가 집약된 것이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이처럼 생명을 건 눈 맞춤을 시도할까? 연애 초기의 남녀들조차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지는 않는다. 눈을 맞추고 아이의 시선을 끌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도리도리를 한다.[해오름출판기획]
아기가 엄마한테 눈을 맞추는 것은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는 몸짓이고 눈빛이며 삶의 요구가 집약된 것이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이처럼 생명을 건 눈 맞춤을 시도할까? 연애 초기의 남녀들조차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지는 않는다. 눈을 맞추고 아이의 시선을 끌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도리도리를 한다.[해오름출판기획]

 

“할머니, 옛날에 애기한테 도리도리 해주셨지요?”

“그럼 했지, 안 해주는 사람이 있었나?”

“어떻게 해 주셨어요?”

도리도리 도리 도리/ 우리 아기 잘 한다/ 뭐가 좋아 흔드나/ 신이 나서 흔들지/ 도리도리 도리 도리/ 우리 아기 돌도리/

할머니들에게 아기 어르는 소리를 배우는 장면이다. 도리도리는 누구나 아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간단하게 확인하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할머니 입에서는 노랫말을 제대로 갖춘 도리도리 소리가 흘러나왔다.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놀이를 배웠다.

노랫말 뿐 아니라 할머니의 표정, 호흡, 숨소리까지도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6개월쯤 된 한뫼 앞에서 도리도리를 시도했는데 몇 번을 해도 따라하지 않았다.

멍하니 쳐다보거나 억지로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할머니들한테 가서 물었다. 왜 가르쳐 준 대로 했는데 안 되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할머니가 어떻게 했냐고 되물으셨다. “할머니 말씀대로 그냥 애기 앞에서 도리도리를 했지요.”라고 했더니 직접 해보라고 하셔서 해 보였다.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하니까 안 되지, 애기 눈도 못 맞추면서 무슨 도리도리를 해” 하시더니 눈 맞추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할머니는 혀를 입천장에 부딪치면서 “똑, 똑, 똑” 소리를 냈다. 옆에 있는 할머니도 눈 맞추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자, 우리애기 할머니 얼굴 봐야지, 그렇지, 그렇지, 어이고!.” 집에 돌아와서 도리도리를 했더니 몇 번 만에 한뫼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도리도리를 따라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어떤 놀이를 할 때 시작하는 말이나 몸짓이 놀이를 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 놀이를 통해서 감정과 마음을 나눌 때 눈을 맞춰야 한다는 것 등이다.

엄마들은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아기랑 계속 눈을 맞춘다. 젖을 먹이면서 기저귀를 갈면서, 옹알이를 받아주면서도. 친한 사람들끼리 이야기할 때도 여자들은 서로 눈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은 다르다. 무슨 이야기를 할 때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같은 방향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서는 말할 때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나도 아기랑 놀 때 처음에는 눈을 맞추기보다는 힘으로 놀아줬다. 아기와 눈을 살갑게 맞출 수 있게 되면서 몸과 마음이 이어진다는 느낌이 살아났다.

요즘 감정이입 훈련 또는 공감 훈련 프로그램에서 강조하는 것이 눈 맞추기이다. 하지만 공감훈련에서 하는 눈 맞추기는 갓난아기 때 놀이하면서 하는 눈 맞춤의 효과를 절대 따라올 수 없다.

아기가 엄마한테 눈을 맞추는 것은 모든 감각을 총동원하는 몸짓이고 눈빛이며 삶의 요구가 집약된 것이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이처럼 생명을 건 눈 맞춤을 시도할까? 연애 초기의 남녀들조차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보지는 않는다.

첫 아이를 기를 때 이런 깨달음이 있었기에 둘째를 기를 때는 도리도리에 대한 아이의 호응을 쉽게 끌어낼 수 있었다.

왜 아기는 가족이 다 모였을 때 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 이것이 아이들을 기르면서 내 마음 안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이었다. 이는 개체적인 자기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갓난아기일 때도 사회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이란 동아리 안에서 서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 함께 살고 있는 우리라는 감각을 아이는 놀이를 통해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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