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메이커스TV 경철수 기자]4.10총선이 꼭 한 달 남았다. 사전 투표일(4월5~6일)을 생각하면 사실상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야당의 후보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곳도 적잖다. 한 때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본부가 전국적으로 정책선거 운동을 벌인적이 있다.
최소한 유권자가 자신들의 지역구 후보에 대한 면모를 제대로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지역주민들을 위해 재임기간 심부름꾼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약속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는데 야당은 자기당의 대표주자 조차 결정해 주지 않으니 유권자들은 그저 답답할 뿐이다.
일각에선 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제3지대 신당들의 창당이 줄을 이으면서 자기당의 공천탈락자가 이탈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후보 공천을 최대한 늦춘다는 얘기까지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이는 ‘참 나쁜 정치’이다. 유권자인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그저 선거구도상 이기는 선거에만 매몰돼 정작 자신들을 뽑아 줄 유권자에 대한 도리를 지키지 않는 ‘깜깜이 선거’인 것이다.
그저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 벼락치기 후보공천으로 일관하면서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후보 간 마타도어식 ‘흑색선전’으로 축제가 돼야 할 선거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기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정치가 국민의 희망이 되기보다 혐오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정말로 정치권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없는 것 같다.
매니페스토는 개인이나 단체가 대중에 대해 확고한 정치적 의도와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연설이나 문서의 형태이다.
종종 비정치적인 분야에서도 자신의 주장과 견해를 분명히 밝히는 때에도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예산확보, 구체적 실행계획 등이 있어 이행이 가능한 ‘선거 공약’의 의미로 주로 쓰인다.
개인이 정치적인 견해를 분명히 하기 위한 매니페스토로는 버트런드 러셀과 아인슈타인이 핵과 핵전쟁에 대한 반대를 표명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Russell-Einstein Manifesto, 1955년)이 유명하다.
예술분야에선 이탈리아 시인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가 프랑스어로 발표한 ‘미래파 예술인의 선언(Futurist Manifesto, 1909년)’이 시작이다.
기술 분야에선 리처드 스톨만의 ‘GNU 선언문(GNU Manifesto, 1985년)’이 유명하다.
선거나 정당정치에서 정책과 정강을 분명히 하기 위한 의도로 쓰인 것은 1835년 영국 탐워스 선거구의 보수당 후보였던 로버트 필의 ‘탐워스 선언(Tamworth Manifesto)’이 효시이다.
이후 영국의 총선에선 각 정당이 책자로 된 매니페스토를 배포한다.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이 매니페스토에 따를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선 1947년 하원에서 법적인 구속력은 부정됐으나 성격상 도의적 책임이나 정치적인 구속력은 존재한다.
이제라도 얼마 남지 않은 본선거 기간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면모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정책선거에 임해주길 바란다.
길만이 정치가 국민의 희망이 되고 혐오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돕는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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