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시 한수면(수산면)의 황강영당은 송시열(宋時烈)과 그의 제자 권상하(權尙夏)·한원진(韓元震)·권욱(權煜)·윤봉구(尹鳳九)의 영정을 모셨다.
제천시 한수면(수산면)의 황강영당은 송시열(宋時烈)과 그의 제자 권상하(權尙夏)·한원진(韓元震)·권욱(權煜)·윤봉구(尹鳳九)의 영정을 모셨다.

지난 13일 끝이 난 충북교육감선거가 양자대결로 치러지면서 당시 후보자들의 제자가 옛 스승의 선거운동을 돕는 대리전이 모 방송에 보도되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결과를 떠나 사제지간의 정이 무너지고 있는 각박한 요즘 세상에 훈훈한 미담거리가 돼 회자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지역에도 이 같은 사제지간의 정에서 비롯된 지명이 있다.

옛 부터 우리나라는 유교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나라답게 스승의 은혜를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 해 임금과 부모님에 버금가는 은혜로 여겨 왔다. 특히 우리 충북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중심이었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태어나고(옥천군 이원면 용방리의 구룡촌) 그의 학문을 왕성하게 펼치던 곳이었다.

이런 연유로 제자들이 스승을 흠모하고 따르면서 지어진 지명이 자연스럽게 전해지고 있다. 우암 송시열의 공과(功過)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당시 최고의 유학자로서 예론(禮論)의 대가였다. 송시열은 항상 당쟁과 논쟁의 중심에 자리할 만큼 그 존재감과 영향력이 컸다.

이에 따라 송시열이 ‘2차 예송논쟁’이란 당쟁에 휘말려 사약을 받은 이후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벼슬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만들어진 지명이 남아 전해지고 있다.

송시열의 가장 큰 제자이자 근세 유학의 중창자인 기호학파의 지도자 권상하(權尙夏)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스승인 우암이 관직을 추탈당하고 유배돼 남인이 정권을 잡게 되자 고향인 황강(당시 남한강을 이곳에서는 황강黃江이라 하였음. 현재의 제천)으로 돌아와 학문에 힘쓰고 한수재(寒水齋)를 지어 후학양성을 도모했다. 황강은 당시 남한강을 말하며 현재 제천시 한수면이다.

한수재(寒水齋)는 송시열이 제자인 권상하에게 지어준 그의 호(號)로 권상하는 이 한수(寒水)라는 말을 무척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결국 이 곳을 그의 호를 따 (제천시)한수면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또 권상하는 송시열이 정읍에서 사약을 받자 그의 유지를 모아 괴산에 화양서원을 세웠다. 이곳에 화양서원을 세운 것은 송시열이 생전에 이곳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양성했기 때문이다. 원래 이곳은 회양목이 많아 황양동(黃陽洞)으로 불리었는데 이 화양서원에서 이곳의 지명을 화양리라 바꿔 부르게 됐다.

권상하의 제자로 남당 한원진(南塘 韓元震)이 있다. 그는 잘 알려진 학자는 아니었지만 송시열, 권상하의 학맥을 이어받은 노론 유학자의 거두였으며 특히 그가 주장한 인물성 이론은 ‘조선과 오랑캐는 다르다’는 이념으로 개화기 ‘위정척사운동’에 사상적 기반이 됐다. 충남 홍성과 예산지역 등에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탄생하는 이론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 한원진도 당쟁싸움에서 축출돼 이곳 고향에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이를 기려 그의 호(號)를 따라 남당리라 하였다. 우리가 흔히 대하축제와 쭈꾸미로 유명한 충남 홍성의 ‘남당항’은 바로 이 남당 한원진에 의하여 유래된 지명인 것이다.

이와 같이 제천시 한수면,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충남 홍성군 서부면 남당리 등은 송시열, 권상하, 한원진으로 이어지는 학맥과 연결되는 지명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큰 이슈 없이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양자대결로 끝이 났다. 하지만 정치를 떠나 스승과 제자 간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는 사제지간의 훈훈한 정에서 우린 아직 우리사회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를 뒷받침해 주는 우리지역의 지명 어원 유래를 본받아 한국 사회가 좀 더 밝아지길 희망해 본다.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사진)은 청주 문의에서 태어나 충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를 졸업했다. 현재 문화재보존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 입사,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문화와 지명에 관심을 갖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명속의 역사산책(디자인 신화)’이란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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