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사지 터-김생(金生)이 태어나 활동한 내역을 전하는 김생 유허집자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이 김생이 활동한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김생사지 터-김생(金生)이 태어나 활동한 내역을 전하는 김생 유허집자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이 김생이 활동한 곳임을 알려주고 있다.

얼마 전 개최된 전국 농업인 서예대전에서 충북지역의 많은 농업인들이 참여해 입선한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우리조상들은 예로부터 사람의 능력을 판단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신언서판은 말 그대로 몸가짐과 말씨, 글씨, 판단력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판단력과 함께 글씨를 중시해 글쓰기(서예)를 중히 여겼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는 명필(名筆)이 많았다.

신품사현(神品四賢)이라 해 신라와 고려의 대표적인 4명의 명필로 김생(金生), 탄연(坦然), 최우(崔瑀), 유신(柳伸)이 있다.

또 조선시대 4대 명필로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 자암(自庵) 김구(金絿),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꼽힌다.

이런 명필들의 발자취가 녹아들어 유래된 지명 이름도 남과 북에 적잖다. 북한의 황해북도 토산군에는 석봉리(石峯里)란 지명 이름이 있다.

개성시 북쪽에 위치하고 야트막한 산들이 구릉성 평야를 이르고 있는 전형적인 산지지역이다.

이곳은 한호 석봉의 글쓰기와 어머니의 떡 썰기 대결 일화로 유명한 곳이다. 최근 그의 묘가 이곳에서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석봉이 태어나고 그의 묘가 있다하여 석봉리(石峯里)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충주시 금가면에는 신품사현의 한 명인 김생(金生)으로부터 유래된 지명이 있다. 충주시 금가면(金加面)은 당초 금생면(金生面)과 가차산면(加次山面)이 합성돼 만들어진 지명이다.

금생면(金生面)은 김생(金生)이 이곳에 정착해 글을 쓰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충주시 금가면 유송리에 김생사지(金生寺址)가 전해지고 있다.

충북도 기념물 제114호인 ‘김생사지’에는 김생이 창건했다는 김생사 터가 남아 있다. 김생사 주변에는 김생이 남한강의 범람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김생제방’이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남과 북에 명필로 인한 지명이 각각 남아 있는 것을 계기로 충주시 금가면 ‘금생사지 터’와 북한의 토산군 ‘석봉리’에서 교대로 ‘남북평화 기원 서예대전’이라도 열면 어떨까 기원해 본다.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 LH공사 현도사업단장

▷신경직(사진)은 청주 문의에서 태어나 충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 법학 석·박사를 졸업했다. 현재 문화재보존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어릴 때부터 역사와 여행을 좋아했고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 입사,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전국을 여행하면서 여러 지역의 문화와 지명에 관심을 갖고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명속의 역사산책(디자인 신화)’이란 저서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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