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금관[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신라의 금관[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충북메이커스 문재현의 별자리이야기-14.]국립경주박물관에 처음 간 것은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거기서 많은 유물을 보았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것은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신라의 금관뿐이다.

내가 금관을 보기 전까지 알고 있던 모자라고는 아버지가 쓰고 다니던 밀짚모자와 중절모, 마을 할아버지가 쓰고 있던 탕건과 갓이 전부였다.

전체를 금으로 만들고 많은 곡옥과 잎사귀 모양의 장식이 달린 금관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신라의 찬란한 문화를 강조할 대마다 등장하는 유물 가운데 금관이 있었으니 잊혀 지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처음 금관을 봤을 때 저런 모자를 쓰고 다니면 참 불편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저런 모자를 쓰고 다니면 햇빛에 번쩍이고 소리도 많이 났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궁금증은 얼마가지 않아 해소됐다. 할아버지들이 탕건을 쓰고 있다가 외출할 때 갓을 쓰는 것처럼 신라왕들도 평상시에 금으로 된 절풍을 쓰고 있다가 의식이 있으면 금관을 썼던 것이다.

금관에 대한 또 하나의 궁금증은 왜 그 많은 재료들 가운데 금으로 왕관을 만들었을까 이다. 금은 광택이 있는데다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금속이다.

결혼식을 할 때 금반지를 주고받는 것도 이런 금의 속성대로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는 소망이 담긴 것이다. 신라왕들도 나라의 안전과 왕의 권위가 그렇게 영원하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한 일반적인 추론만으로 신라에서 특정시기에 금관이 만들어졌던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옛날 사람들은 우리와 아주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광물 역시 별들의 영향으로 생겨나며 해는 금, 달은 은, 목성은 주석, 화성은 철, 금성은 구리, 수성은 수은을 탄생시킨다고 믿었다.

마치 인간을 잉태할 때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 별의 기운이 체질과 운명을 결정 하듯이 광물역시 천체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의 영향을 받아 그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태아가 열 달의 기간을 거친 후 어머니의 배 속에서 탄생하듯이 모든 광물은 충분히 성숙할 시간이 주어지면 최종 단계에서 금이 된다고 믿었다.

완전한 존재 해를 상징하는 금, 역시나 최고 존엄인 한 나라의 왕(황제)을 상징하는 광물이 됐을 것이다. 그 성숙과정을 인위적으로 촉진시켜 일반 광물을 금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연금술의 시작이었다.

요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금관의 세움 장식이 사슴뿔인가이다. 아니면 김알지 신화를 반영해 계림의 나무를 형상화 한 것인가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이다.

아직도 많은 학자들이 금관의 세움 장식 기원이 시베리아 샤먼의 사슴뿔을 모방한 것이라고 추론하고 있다.

그 근거로 시베리아 샤먼의 모자 가운데 철로 테를 만들고 사슴뿔 두 개를 꽂은 관을 제시한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시베리아 샤먼의 모자와 신라 금관은 닮지 않았다. 시베리아 샤먼의 모자는 쇠로 된 둥근 테 위에 십자형의 얼개가 있고 실제 사슴뿔 두 개가 꽂혀 있다.

이와 달리 신라 금관은 세움 장식이 세 개 또는 다섯 개인 데다가 많은 장식품이 달려 있다. 재료도 각기 쇠와 금으로 모자를 만들었는데 신라에선 쇠로 마자를 만든 적이 없고 시베리아에선 금으로 모자를 만든 적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시베리아 샤먼의 모자가 19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시베리아에서 만들어진 모자가 15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신라 왕실에 영향을 미쳤다는 황당한 주장이 오늘날 우리나라 학계의 다수설이다.

임재해는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힌다’는 책에서 신라 금관이 눌지 마립간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론하고 있다.

나는 전적으로 이에 동의한다. 눌지 마립간 시기에 신라와 고구려는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눌지 마립간의 요청에 광개토대왕이 5만의 철기군을 동원에 외세를 물리쳤기 때문이다.

눌지 마립간은 왕관을 포함한 고구려의 선진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신라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 했을 것이다. 그것이 눌지 마립간 무덤에서 잘 나타난다. 신라의 나무곽을 세우고 봉분을 올리는 덧널무덤이 아니라 고구려 무덤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시대의 정신을 보여주는 디자인으로 고구려의 삼족오에 견줄 수 있는 흰 닭이 표현되고 있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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