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메이커스-김창규의 시상이 머무는 곳-7.]

김해화 시인의-나는 내잔의 술을 따른다
김해화 시인의-나는 내잔에 술을 따른다

술잔에 사랑을 채워 마시던 때가 있었다

싸움 앞에 나서는 동지의 믿음으로

이기고 돌아온 기쁨으로

술잔이 넘쳐나던 때가 있었다

돌아올 수 없는 이름 때문에

믿음을 깨트린 가슴 때문에

술잔 크게 흔들린 날도 있으나

사랑은 끝내 엎지르지 않고

쓸쓸하게 비어있는 잔마다 밑바닥 설움이라도 채워주며

술판을 벌이던 때가 있었다

사랑보다 독한 술이 어디 있으리

사랑해 취하고

취해서도 흔들리지 않은 때가 있었다

취하면 취할 수룩 가슴 뜨겁고

눈 더욱 맑아져

가장 맑은 눈물로

마지막 잔을 채우던 때가 있었다

 

먼 길 끌려갔다 돌아온 동지를 위해

다시 돌아 와 모인 날

살아 남기 위해

사랑이 두려워 돌아오지 않은 사람 더 많아

드문드문 둘러앉아 어두워져 가는 사람들

사랑의 노래 끝나기도 전에

벌써 식어버린 잔을 절반쯤 비우고

또는 입술만 적시다가

오래 살아남기 위해

일찍 돌아간 사람들의 자리

덩치큰 어둠이 버티고 앉아 차디찬 바람으로

남아있느 가슴들을 짓누르고

지금 내 잔은 오랫동안 비어있다

 

사랑하는 동지

우리들의 잔이 오랫동안 비어 있으나

어둠이 가로막아

서로 손이 닿지 않으니

자는 자네의 잔에 술을 따르게

나는 내 잔에 술을 따르겠네

 

춥고 어두운 길을 멀리 가야 할 우리

끝끝내 뜨거워야 할 가슴

우리들의 마지막 믿음을 위하여

*이 시는 관계자의 허락을 받고 게재합니다.


▷김해화 시인은 1957년 전남 승주군 주안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노동자 시인이다. 초등학교 만 나왔다. 1984년 실천문학 14인 신작시집 '시여 무기여'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인부수첩, 우리들의 사랑가, 누워서 부르는 사랑노래, 김해화의 꽃편지 등이 있다. 그는 사진작가다. 그리고 2005년 '남북작가대회' 평향, 모향산, 백두산 대회를 다녀왔다.

그의 시는 노동의 가치가 숭고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최근에 '나는 내 잔에 술을 따른다' 시집을 냈다. 그는 착한 노동자이며 노동자 시인으로 알려져 있고 지금도 노동의 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고 있다.

/김창규의 시상이 머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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