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무농정.[사진=충북메이커스 경철수 기자]
청주 무농정.[사진=충북메이커스 경철수 기자]

[충북메이커스 문재현의 별자리이야기-15.]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살던 집은 초가집이다. 부엌 한 칸과 방 두 칸, 마루로 이뤄진 셋 칸 집이었다. 초가집은 좁긴 했지만 따스한 장소였다.

방은 좁고 천장은 낮았지만 그래서 이야기하기 좋았고 놀이할 때도 꽉 차는 느낌이었다. 지붕이 짚으로 돼 있기 때문에 신기한 사건도 많이 일어났다.

유기물인 짚으로 얹은 지붕은 그 안에 많은 곤충을 길렀고 새들도 집을 지었다. 그들을 잡아먹는 구렁이도 살았다.

어른들은 집에 사는 구렁이가 집안에 복을 가져오는 업이라고 해서 절대로 해를 끼치지 못하게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즈음 우리 마을에 몇 집이 사는지 세어본 적이 있는데 마흔다섯 집 가운데 마흔두 집이 초가집이었다.

기와집은 딱 3채였는데 양조장집 삼형제가 살았다. 기와집의 느낌은 아주 좋았다. 집이 아주 넓고 방들은 깨끗했다. 그리고 구석구석 뜰이 있어 숨바꼭질하기도 좋았다.

기와집에서 특히 좋았던 것은 처마였다. 우리 집은 초가집이라 처마가 얕았지만 깊은 처마를 가진 가와집은 그늘도 깊었고 햇살과 그늘이 변해가면서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초가집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그저 막연하게 가졌던 느낌은 어른이 돼서 건축에 관한 책도 읽고 건축답사를 하면서 우리 건축요소 가운데 처마야말로 위대한 창조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것은 외부 자연을 조절하는 장치였다.

서양에서 집을 햇빛과 비바람, 추위를 막아주는 기계장치라고 생각하지만 채와 마당으로 이뤄지는 우리 건축은 대자연과 함께 소통하는 느낌이 강하다.

태극기의 음양처럼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지고 집을 이루고 있는 재료들도 자연적인 소재라서 그 집에 사는 사람이라면 자연에게 스스로 마음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때 우리 건축이 가진 빛깔이 무채색 계통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야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곳에선 계절의 변화와 색채를 담아내는 데 흰 벽과 검은 기와, 갈색 초가집 같은 무채색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전통 건축에선 건물은 양, 마당은 음으로 보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건물만 있고 마당이 없다면 음양의 조화를 상실한 공간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반드시 마당을 두었다. 안채에는 안마당, 사랑채에는 사랑마당, 행랑채에는 행랑마당을 갖췄던 것이다.

건축에 대한 공부를 넘어서 전통신앙과 민속에 대한 공부를 하니 어렸을 때 집에서 했던 장소 경험의 뜻과 속살을 이해할 수 있었다.

부뚜막을 더럽히거나 부뚜막에 올려놓은 물그릇을 건드리면 어머니가 왜 기겁을 했는지, 화장실에 갈 때는 왜 반드시 인기척을 내야 했는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왕신이 노여워하고 측도부인이 해코지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집 안에 있는 신들 가운데 터주신 같은 토지신도 있지만 나머지 신들, 곧 성주신, 칠성신, 삼신, 제석신은 신화로 볼 때 하늘에서 온 신이다.

따라서 집은 하늘과 땅, 사람을 연결하는 신성한 곳이다. 이렇게 신이 좌정하는 곳이기 때문에 집이 들어서는 장소 역시 하늘과 땅의 조화, 곧 별자리의 상서로움 이뤄진 곳이 명당인 것이다.

집이 들어서는 장소가 우주적인 조화가 이뤄지는 곳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집의 입면이나 형태 역시 우주의 모습을 반영했다. 한옥을 살펴보면 모든 요소가 동양의 전통적인 우주관에 따라 배치돼 있다.

한옥의 구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우주관은 개천설이다. 개천설은 중국 한나라 때 왕충(AD27~97)에 의해 정리된 우주론으로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도 한다. 천원이란 말 그대로 하늘이 둥글다는 것으로 우리가 하늘을 쳐다보면 마치 둥근 원을 반쪽으로 쪼개놓은 모습이기 때문에 생긴 관념이다.

하늘이 둥글다는 것은 기와집의 현수선, 지붕의 용마루선, 추녀선에서 잘 나타난다. 기와에 새겨진 문양 역시 다를 것이 없다. 암막새나 수막새, 치미 등을 보면 그 문양의 내용이 구름이나 새, 연꽃 등 하늘나라, 또는 해를 상징하고 있다.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 마을배움길연구소장

▷문재현(사진)은 청주에서 태어나 마을배움길연구소장으로 ‘왕따 예방 프로그램인 평화샘 프로젝트 책임연구원’도 맡고 있다. 새로운 학문, 새로운 공동체,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해 탐색 중이다. 두 아이를 기르면서 아기 어르는 소리와 자장가를 복원하고 공동육아 등 유치원 교사들과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의 토대를 만들었다. 별자리 인류의 이야기 주머니, 우리 강산 가슴에 담고, 원흥이 방죽 두꺼비, 학교 폭력 멈춰, 아이들을 살리는 동네, 마을에 배움의 길이 있다 등 다수의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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