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달 법무사나정윤사무소 사무장
이재달 법무사나정윤사무소 사무장

[충북메이커스 오피니언 이재달]논어의 학이편 첫 구절은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悅乎)이다. 배워서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란 뜻이다. 우린 이 뜻을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지식이 생기니 기쁘지 아니한가로 배웠다. 

논어 학이편 6번째 구절에 제자(弟子), 입즉효(入則孝), 출즉제(出則悌), 근이신(謹而信), 범애중(汎愛衆), 이친인(而親仁). 행유여력(行有餘力), 즉이학문(則以學文)이라고 어린 사람은 집에 들어가선 부모님께 효를 행하고, 밖에 나가면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을 근엄하게 하여 신의가 있어야 하며, 사람들을 널리 사랑함으로써 인을 가까이 하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또 그렇게 신의와 인을 행하고도 힘이 남으면 그 힘으로 글을 배워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렇다면 첫 구절의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효(孝), 제(悌), 신(信), 인(仁)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이며, 그 다음에 학문(學文)을 하라는 것으로 우리의 '선조들은 지식을 배우는 것 보다 인성교육을 우선시 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의 상황은 인성교육은 뒷전이고 지식만을 강조하는 사회가 되어 학문을 가르치는 것도 뒷전이고 진학 및 취업만을 위한 교육에 골몰하고 있다.

각 대학은 학문적인 성과가 아닌 취업률로 대학의 순위가 가려지고, 고등학교는 수도권 대학에 얼마나 진학을 시키느냐가 학교의 순위가 되어 버렸다.

대학은 국어사전에 고등 교육을 베푸는 교육 기관.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한다라고 정의돼 있다.

 대학(university)은 선생과 학자들의 공동체(community of teachers and scholars)란 뜻을 가진 라틴어 '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에서 나온 말(출처: Wikipedia)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대학은 전통적으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는 교육기관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더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기 위한 기관으로 변질됐다. 

교육도 학술적인 교육을 담당하던 자연과학 계열은 모두 없어지고 취업에 유리한 학과만 남아있어 더 이상의 학술 교육은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그에 발맞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 입시를 위한 교육으로 맞춰지고 좋은 대학에만 갈수 있다면 인성교육은 안해도 된다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학교에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전교생이 학원을 다니는 이상한 구조로 변모하고 있고, 학교는 학생들의 인성교육이나 학과교육을 담당하기 보다는 그냥 학교에선 시간만 때우고 학과 수업은 학원에서, 학교에선 시험만 잘 보면 그만인 시대가 되었다.

학부모는 아이들이 잠자는 시간외에는 모든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고 있어 가정교육을 할 시간을 잃어버렸고, 그에 따라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대한 부분을 가장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담당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기본적인 예절교육을 통한 인성교육도 포기 하였고, 오히려 학생들에게 학생인권 교육에만 전념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기본권을 누리기 위해선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는 교육은 전혀 하지 않고 있어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권리만 있고 의무는 없는 기형아로 키워내고 있다.

일부 교사에 의해 교육되기는 했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이 자신을 훈계하는 어머니에게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우리나라 교육이 얼마나 잘 못 되었는지 새삼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사망으로 인해 전국이 교권보호를 해야 한다며 혈안이 되어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 각 시민사회단체들이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며 가장 큰 문제로 '학생인권조례'를 들고 있으나, 정작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한다고 하여 없어진 교권이 다시 생길리는 만무하다충북에는 학생인권조례가 없지만 교권이 바로 섰는지 묻고 싶다. 

교사 스스로 자신들은 노동자라고 표현하고 있고, 그로인해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은 교사가 아닌 교사 노동자에게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교사노동자가 하는 말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윗사람, 책임자 나오라고 한다.

이러다가는 모든 문제에 교육감 나오라고 할 것으로 보이며, 그마저도 성에 안찬다고 생각하면 교육부장관, 대통령 나오라고 할 판이다.

백화점, 회사 등에서 클레임이 걸리고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가 담당직원 말고 위에 책임자 나오라고 하는 격이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여 학교에서 혼나고 오면 옆집 친구가 일러주고 그러면 오히려 부모님께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모두가 학교에서 꾸지람을 들은 사실을 숨기는 시대였으나, 언젠가부터 학교에서 혼나고 오면 부모님께 이르고, 부모님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교사에 항의전화를 하고, 학교로 달려가서 교사에게 폭력을 휘드르는 시대로 변모하였다.

학생인권조례로 부족하여 이제 '교직원인권조례'를 제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 학생은 학생의 권리만 주장하고, 교사는 교사의 권리만 주장하다 못해 학부모마저 '학부모인권조례'를 만들어 학부모의 권리만 주장하는 이기주의 사회가 되지 않을까 우려한다. 

교육 3주체가 각기 자신들의 권리만 주장하다 보면 과연 교육이 될까 싶다.  이는 갈등을 봉합하여 교육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고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대한민국의 학부모 누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것인가. 이제 더 많은 홈스쿨, 대안학교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고,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가 아닌 학원이 전담하는 이상한 사회로 변모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교사도 더 이상 노동자의 삶을 살기를 갈망하지 말고 진정한 교육자가 되어 거듭나야 할 것이다.

교권이 상실되는데 20여년 이상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없어진 교권을 다시 살리는데는 적어도 30여년 이상이 걸릴 것이란 말이 있어  교사는 자신의 제자들이 교사를 할 때 교권이 바로 설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교사노동자가 아닌 교육자로 다시 태어날 때 교권이 살고, 학부모들도 교사를 존중이 아닌 존경하게 될 것이다.

옛날 고관대작의 자녀가 자신의 스승을 무시하는 말을 하자 고관대작이 스승을 모시고 성심성의껏 식사 대접을 하자 그의 자녀도 자신의 스승을 깍듯이 따라 후일 재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관대작은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자녀의 잘 못을 행동으로 지적하여 자녀가 바뀌게 만든 것이다.

문제는 교사가 과연 훌륭한 스승인지에 대한 반성은 없고 교사를 깍듯이 모시지 않는 학부모에게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교사 스스로가 먼저 훌륭한 스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 라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성내지 않는 사람이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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